마가복음 속에 나타낸 기독론 연구

▶ 마가복음 속에 나타낸 기독론 연구

○ 마가복음의 기독론

마가 복음서에서 나타난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종말적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들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사회-정치적인 면과 종말론적 구원과 신학적 의미가 내포된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와 예수의 신성을 말하며, 하나님 자신의 종말적 구원 활동이다. 예수의 전승은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과 외부 세력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해서, 복음서로 발전했다. 많은 학자들이 마가복음이 최초의 복음서이며,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토대로 각자의 자료(M, L)를 가지고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해석한다.

○ 마가복음의 예수에 대한 이해

1) 두 가지 신학적 모티브

마가복음은 예수의 사역에 관한 두 가지 신학적 모티브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예수의 논증거부와 침묵의 모티브’와 둘째로 ‘고난과 죽음에 대한 동의의 모티브’이다. 이 두 모티브는 마가의 의도뿐만 아니라 문학적 구조를 결정시켜준 요소들이다. 왜냐하면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 신학적이고 목회적 목적으로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예수는 참 인간이며 동시에 완전한 신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교회의 위험한 경향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의 생애를 설명하기 원하였다. 마가복음서에서 신앙은 예수의 기적행위에서 나타나는 놀람과 우둔함에 대한 반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마가는 거짓 교훈을 비난하고 주에 관한 올바른 신앙을 교회에 세우기를 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가는 시험과 박해에 직면한 공동체에 대해서 예수의 교훈을 제시함으로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데 목회적 관심을 갖고 있다. 교회에 두 기둥인 베드로가 바울이 순교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모순되지 않는 사건이라는 것을 논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고난 받는 메시야직의 예수 이야기와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들만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예수의 교훈의 골격 안에 교회의 박해를 자리매김 하였다. 마가에서 신학은 기독론인데 그 기독론은 교회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길은 주가 이미 받은 고난의 길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2) 고난의 십자가

마가복음 1:1절의 기독론적 진술은 1:11, 9:7절의 하나님의 선언과 마가복음 15:39절의 인간의 고백에서 예수의 참된 인격의 선포임을 보여준다. 사실 마가에게 유일한 참된 표적은 외적인 패배의 비극과 동시에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계시를 동시에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십자가뿐이다. 성전 휘장의 갈라짐을 본 백부장의 고백은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받는 모습에 대한 고백이다.

마가복음에서의 인자 칭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예수를 그리스도, 때론 메시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고백하였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희망과 성취들이 그에게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유대교의 종말 기대에서 표현 된 모든 존칭들이 사용된다.

1. 복음서와 칭호들

1) 마가복음

마가의 입장에서는 마가가 예수의 것으로 판단하는 그 가르침이 예수를 다니엘이 예언한 인물로 밝힌다고 볼 수 있다(다니엘 7:13-14). 그러나 이미 한 인간적인 인물로서 예수는 그 역할 고유의 권세를 행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는 다른 가능한 표현들보다 인자라는 칭호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밝혀질 때(막8:29-30;14:61-62) 그 자신은 인자가 무엇을 할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반응을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2) 마태복음

마태복음만의 가르침에서 인자는 특히 오실 구세주와 심판자로 이해된다. 마태복음 10:23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라고 한다. 마태는 이것을 예루살렘의 함락에 대한 언급으로 보고 이 때 인자가 심판하러 오는 것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3) 누가복음

누가복음의 인자는 마가복음의 일반적인 묘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4) 요한복음

요한복음에서 인자의 언급은 들림까지 연장된다. 또, 생명을 주는 역할은 인자의 살을 먹으라는 말씀에도 나타나는데(요6:53), 이 말씀은 분명히 최후의 만찬을 반영하지만영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5) 요약

①복음서 저자들은 동일하게 예수가 유대적인 의미에서 메시아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도한다. 예수는 자신을 단 한 번도 메시아로 칭한 적이 없으며 메시아는 단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사용되었다.

②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 지 질문하였다. 그 후에야 비로소 예수는 제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질문하였다. 그 때 제자단의 대표자인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막8:29)” 이런 장면에서 역사적인 보도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분의 첫 번째 증인인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선포했다는 사실이 반영되고 있다.

③인자의 도래를 다루는 말씀들은 도래를 대망하는 유대교의 묵시적인 기대와 동일하다(막8:38 이하 병행; 누가복음12:8절 이하 ;누가복음17:22,24;18:8)

④수난 당하고 죽으시며 부활하신 인자에 관한 말씀은 원시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와 일치한다.

⑤현재 활동하시는 인자에 관한 말씀들은 다른 두 그룹과 전혀 관련 없이 사용된다.(막2:10 병행;2:28 병행; 마태복음11:19)

⑥마가복음 13장 32절 병행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 ‘아들’이란 개념이 발견 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막13:32) – 이 문장은 누가복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추측하건데 누 가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모른다는 편견을 극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예수와 인자

1) 인자와 메시야

몇몇 학자들은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 혹은 메시아적 인물로 인식하며 말씀했는지 여부를 논쟁한다. 그리고 예수가 인자를 메시아적 자기 칭호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메시아와 인자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을 나타내며, 만일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했다면 인자로는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가 메시아로 행한 증거는 분명하다.

2) 현재 혹은 미래의 인자

가장 중요한 말씀들(막8:38, 눅12:8-9)은 예수가, 권세를 인정받지 못한 인물로서의 자신과 부인 할 수 없는 권세를 가진 인자를 대비시키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그리고 일인칭이 삼인칭으로 전환된 것은 분명히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니엘 7:13-14절 을 인용한 것으로 설명 될 수 있다.

3) 예수의 자기 호칭으로서의 인자

자신의 역할을 말할 때, 예수는 “메시아”나 “하나님의 아들” 보다는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의 부활 후, 그리스도교 인들은 이 칭호를 예수에 대한 언급, 혹은 고백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 마가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칭호는 다른 칭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독론적 칭호이다. 각 전승들은 예수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고 예수 자신이 이 칭호들을 사용함으로써 예수의 인격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특히 마가는 이 “하나님의 아들”칭호를 자주 사용하며 그의 복음서 서두와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고루 배치하여, 저자 자신이 다양한 전승들로부터 받아들인 기독론적 칭호를 통일적인 의미로 파악하려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1) 마가복음 1장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그의 작품을 자기 방식대로 시작한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예수가 본래 이런 분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하나님의 아들”은 마가의 의도가 있다. 또한 이러한 마가의 의도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들” 칭호가 이미 지배적인 기독론적 진술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2) 마가복음 111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 의하면 예수는 하늘의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아들로 선언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이것은 예수가 여기서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이 구절을 구약성서의 시편(2장7절)의 영향 하에 있다고 본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도다”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다윗적인 아들이 기대와 관련된 메시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을 인용하여 마가는 예수가 침례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3) 마가복음 311, 57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마가는 이미 있던 전승들을 받아들여 독자들에게 예수가 권능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초자연적인 세력을 가진 귀신들은 그를 바로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 당시 주변상황이 헬레니즘 유대주의의 방식에 따라 기적을 행하여 병고치는 사람은 누구나 신적인 아들로 이해되어졌고, 그에 따라서 예수까지도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마가도 기적행위를 하나님의 아들 계시의 타당한 수단으로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마가복음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이 구절에서는 예수의 운명을 지켜보던 백부장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고백은 마가의 특별한 관심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아들의 십자가에 자신을 들어내고, 모든 사람들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새로운 신앙적 사상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의 이방인에게로의 열린 신앙이 이방인인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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