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기독교의 예수

▶ 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기독교의 예수

○ 바울의 예수 이해

1. 메시야로서의 예수

-바울은 두 가지 면에서 예수를 이해하고 있다.
① 승천하신 주로서의 예수
② 유대인의 혈통에 따라 나신 분(롬 1:3, 갈 4:4, 갈 1:19), 지상에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도와주고 12 제자들을 데리고 전도 생활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고후 1:3,4, 고전 14:4).
-사람 예수가 신적 메시야로 이해. 한 사람 예수 안에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어 존재한다.

2. ‘주’로서의 예수

-승천하신 예수와 신비적인 합일을 체험한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예수의 주되심을 확신한다(고전 12:3).
-바울에게 주로서의 예수는 개인적인 주가 아니라 우주적 주되심을 강조한다(고전 8:6, 엡 4:6).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상태에서 우주를 주관하시므로 하나님의 위치에 계신다고 이해한다.
-주로서의 예수는 신적인 동시에 그의 본체가 신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를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은 구원을 얻는 것이라 주장한다(롬 10:9).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대치한다.
① 누구든지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욜 2:3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② 야훼를 주로 대치한다: “주의 날”(고전 5:5, 살전 5:2, 살후 2:2)이 “야훼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날”(고후 1: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8), “그리스도의 날”(빌 1:6,10, 2:16).
③ “하나님의 심판대”(롬 14:10)가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세상을 다스린다(롬 2:16).

3.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사셨다고 증언한다(A.M. Hunter, G. Ladd: 롬 1:3, ὁρίζειν).
-예수가 성육신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고전 8:6, 골 1:15-17, 빌 2:6).
-바울은 예수가 여자의 몸에서 났고, 사람의 모양을 입었다고 증언한다(갈 4:4, 빌 2:7, 롬 8:3).

4.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예수

-첫째 아담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요 둘째 아담은 예수다(고전 15:45-47). 이것은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고 예수도 인류를 대표하여 구속사업을 성취했다는 계약신학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바울은 선재(先在)를 말할 때에도 천상적인 사람(heavenly Man)으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서, 말씀으로서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位)로서의 선재를 말한다. 그가 성육신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으므로 예수를 제2의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른다.

5. 속죄자로서의 예수

-희생적 죽음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구약의 제사 제도와 연결시켜서 해석한다(롬 5:21, 롬 3:25, 엡 5:2. 고전 5:7, 화목제물).

-대표적 죽음과 대인적 죽음
① 예수의 죽음은 대표적(vicaious)죽음-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의미다(롬 5:8, 롬 8:32, 엡 5:2, 갈 3:13). 대표적 죽음(vicarios death) 또는 대신적 죽음(substitutionary death). 이것을 구분하기 보다는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② 예수의 죽음은 대신적(對神的)인 동시에 대인적(對人的) 죽음-“화목제물”의 해석문제, ἰλαστήριον, propitiation 또는 expiation(롬 3:25)
1.5.3. 구속적 죽음 및 화해적 죽음
① 예수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죽음-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으려면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역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구속”의 뜻은 무엇을 매입(買入)하다는 것이다: λύτρον, ἀπολυτρόσις, ἀγοράζω, ἐχαγοράζω, redemption, ransom(속전, 막 10:45).
② 예수의 죽음은 신인간(神人間)의 화해를 위한 죽음-화해자로서 그리스도가 이룩한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담을 헐고 양자를 화해의 관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고후 5:18, 골 1:2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비본래적인 관계를 없게 하고 본래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 “엔 크리스토”( έν χριστῷ , in Christ)의 해석

1. 신비적 해석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 “엔 크리스토”( έν χριστῷ , in Christ)와 그리고 그와 동등한 말을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종종 靈化시키는 신비적인 방법으로 해석되어져 왔다. 디즈만(A. Dessmann)은 이것을 바울 기독론의 중심 단어라고 하였으며, ‘그리스도 – 신비주의’ 라고 불렀다.

이 학자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고린도후서 3:17과 같은 진술 즉 “주는 영이시니”라는 말씀이 증거로 인용되었다. 디즈만은 “그리스도 안에” 란 표현을 다소 거주적인 의미로 이해했다. 즉 우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안에’ 살고, 공기가 또한 우리 ‘안에’ 있어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는 신자들 안에 산다는 것이다.

슈바이처(A. Schweitzer)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영-그리스도’ (a Spirit-Christ)로 본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예수는 죽으셨을 때 그의 육체의 몸을 버렸다. 그래서 죄와 죄의 능력은 파괴되었다고 한다. 또 “그리스도 안에” 라고 하는 표현을 “영-그리스도” 와의 신비적 일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리고 이 신비적 연합은 죄와 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는 죄로부터의 이 영적 구원이 바울 가르침의 중심되는 흐름이라고 주장하며, 법정적인 칭의는 부차적인 흐름의 사상이라고 한다.

바이스(J. Weiss)는 종교사학파의 다른 회원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어떤 종류의 ‘에너지’ 혹은 ‘액체’라고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아마 바울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헬라의 신비 종교에 비추어 해석한다.

2. 소속 및 관계적 해석

스케프(J.A. Schep)는 “부활체의 본질”(The Nature of the Resurrection Body)이라는 저서에서 “엔 크리스토”( έν χριστῷ , in Christ)라는 표현은 신비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신비적인 해석은 고린도후서 3: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에 대한 이전의 연구와 바울 자신의 여러 가지 다른 기독론적 진술들의 명백한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 안에” 라는 표현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모든 이론은 바울의 주된 사상의 흐름, 즉 구속 – 역사적 흐름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지 못한다. 바울의 작품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아담이 전 인류를 대표하듯이(롬5:12 이하, 고전15:20 이하 ; 45절 이하) 그리스도는 역사 내에서 구속사역을 행하셨고,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 사역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 안에”란 표현은 “아담 안에”라는 말과 병행을 이룬다.(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리고 후자이든 전자이든 신비적인 방법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아담 안에”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고(all-in-one),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는(one-for-all) 연대사상(the corporate idea)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것도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③ 그러므로 ‘안에’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어떤 신비적인 융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 에 소속되는 것”, “~ 의 대표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에베소서 1:4에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어떤 신자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이것은 또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소속되고”, “대표되어 졌고”, “고려되었던” 자들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④ 이런 방법으로만이 바울이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고 하늘에 앉혔다고 선언하는 여러 가지 진술들을 만족할만하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을 때 똑같은 것이 그들에게도 일어났다.(롬 6:8-11, 엡 2:4-6, 골 3:1-4) 이러한 단 한 번(once-for-all)의 구속-역사적 사건은 확실히 교회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3. 신비적-관계적 해석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실제적인 경험은 영적인 그리스도와의 어떤 신비적인 연합과 역사적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문제로, 신자는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일어났을 때 그 안에서 죽었고,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하늘에 앉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영은 신앙의 영인데(고후4:13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H. N. Ridderbos).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새로운 창조(피조물)로 중생한 한 사람의 현재적 위치를 나타내는 “존재론적 서술”이면서 동시에 “실존적 서술”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상태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하늘에 앉게 된 나”의 언어적 서술로는 온전한 표현이 불가능한 어떤 내가 지금 처한 상태(물질적 , 3차원적 상태를 초월하는)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별히 개인의 실존적인 영성에 있어서는 이런 신비적 연합의 요소가 있어야 함도 또한 분명하다. 개인적 영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어야하며 또한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그리고 그의 승천이 나의 승천으로 경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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