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로서의 기독교 고찰

▶ 역사적 예수로서의 기독교 고찰

2천 년 전에 갈릴리 지역을 다녔던 예수는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가? 실제적 예수의 삶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복음서 안에서 발견하는 예수의 모습은 얼마나 실제의 예수와 비교할 때 믿을 만한가?

○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은 계몽기 이후에 학자들에게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예수에 대해 알기 위한 질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역 할 때부터 있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은 현대에 와서 다시 불거진 논쟁이라 할 수 있다.

1. 합리주의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자극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미친 사상들 가운데 “이신론”(deism)과 ‘합리주의’(rationalism)가 있었다.
① 理神論(Deism): 16세기에 시작하여 17세기에 영국철학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된 사상(허버트, 로크, 볼테르, 흄). 이것은 자연 신론 사상으로 신이 세상을 만든 후 간섭(섭리)하지 않는다는 것.
② 合理主義(Rationalism): 비합리와 우연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논리적·필연적인 것을 존중하는 입장으로, 도리(道理)·이성(理性)·논리(論理)가 일체를 지배한다고 보는 주의. 합리주의는 경험론 특히 감각론에 대립하는 이론으로 사유(思惟)만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척도로 볼 때에 많은 기독교 전통들, 특히 이적과 같은 이야기들은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 자료 비평을 복음서 연구에 적용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기독교 전통을 이러한 합리주의 입장으로 해석하고자 한 사람은 함부르크 대학에서 동양 언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였다. 그는 처음으로 복음서에 대해 현대 비평적 연구를 적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은 후에 1778년에 그가 쓴 논문인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의도에 대해서’(‘On the intention of Jesus and his Disciples’)는 레싱(G. E. Lessing)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 논문에서 라이마루스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많은 복음서의 이적 이야기들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주장하였다. 또한 복음서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으로서 ‘신앙의 예수’와 ‘역사의 예수’ 사이를 구분하였다. 예수의 선포는 그 시대 유대 종교의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즉, 예수는 예언자적-묵시적 성격을 지닌 유대인인 반면에,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온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이 새로 만들어낸 종교인 것이다.


-‘사기이론’으로서 복음서 이적들을 이해하려는 라이마루스의 입장은 많은 자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아르트(C. F. Barhrdt, 1784-92)와 파울루스(H. E. G. Paulus, 1828)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개개의 이적 이야기들은 이성적인 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복음서에 나타난 이적 보도의 역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이적의 자연 발생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우르(F. C. Bauer)와 헤겔(F. W. Hegel)의 제자였던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는 1835년에 처음으로 『예수의 생애』를 출간하였다. 스트라우스(1808-74)는 이적 이야기들이 착각으로 인한 것이라는 파울루스의 입장을 거부하였다. 그는 대신에 구약 성서에 적용된 신화적인 해석을 복음서에 적용하였다. 그는 예수 전승에 대한 신화적 접근이야말로 초자연주의적 해석과 합리주의적 해석의 문제에 대한 종합임을 밝혀냈다.


-복음서 이적들에 대한 설명은 한 세대 후에 루돌프 불트만(1884-1976)에 의해 받아 들여졌다. 그는 신약 성서의 많은 부분이 신화적 용어로서 표현되어졌음을 발견하였다. 만약에 현대인들이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그 안에 담겨진 신화적인 요소들은 ‘비신화화’(demythologizing)되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2. 경험주의의 역사적 예수 연구

-비이적적인 용어들 안에서 예수를 합리적인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예수의 교훈 안에서의 분노, 놀라움 혹은 묵시적 요소들을 전개하는 것이다.


-홀쯔만(H. J. Holzmann)은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윤곽을 잡아보려고 하였다. 마가복음과 학자들에 의해 구성된 Q 자료들을 통해서 예수의 생애를 구성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대두하였다. 마가복음은 경험에서 얻어진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전한 최초의 복음서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예수의 인격, 종교, 그리고 내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홀츠만의 이론은 바이쓰(C. H. Weiss), 빌케(C.G. Wilke) 등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3. 실존주의의 역사적 예수 연구

-20세기 초에 브레데(Wilhelm Wrede, 1859-1907)는 예수 전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마가복음에서 고백되고 있는 메시야 칭호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1901년에 마가복음 안에 나타나는 ‘메시야 비밀’(the Messianic Secret)에 대해서 영향력 있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 안에서 그는 예수가 자신이 메시야임을 비밀로 하라는 마가복음 안에 나타난 강한 강조는 역사가 아니라, 마가의 신학적 허구라고 주장하였다.


-알버트 슈바이쩌(Albert Schweizer)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10)에서 라이마루스로부터 브레데까지의 역사적 예수 탐구사를 추구하였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슈바이쩌의 공헌은 두 가지이다.
① 슈바이쩌는 그의 이전의 학자들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의 예수에 대한 묘사가 주관적인가를 보여주었다. 당시의 사상적 흐름과 관련하여, 예수의 모습은 묘사되었다. 슈바이쩌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호에 따라 형성되어진 예수를 발견해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의 독립된 인물로 예수를 남겨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② 그의 공헌은 그보다 앞선 종교사학파의 선구자인 바이쓰(Johannes Weiss, 1863-1914)가 작업한 예수 말씀의 종말론적인 차원에 동의하고 강조하였다. 바이쓰는 예수는 19세기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유대 묵시적인 선지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발전시켜, 슈바이쩌는 예수를 묵시적 유대 선지자로, 그리고 세상 종말이 그의 사역 안에 올 것이라고 희망하였던 선지자로 보았다(참조. 마 10:23).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불가능성:
① 슈미트(K. L. Schmidt)는 공관복음서 안에서 예수 전승의 ‘작은 단위들’을 발견하였다. 즉, 공관복음서의 단편성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또한 마가복음이 보도하는 예수의 이야기의 연대기적, 지리적 틀은 마가복음 기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주었다.
② 디벨리우스(M. Debelius)와 불트만(Rudolf Bultmann)에 의해 발전된 양식비평은 복음서 안에 있는 작은 단위들마저도 각각의 기능을 지닌 특수한 양식(form)으로서 이미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었다.
③ 부쎄(Wilhelm Bousset)는 교회 공동체가 예수에게 고백하는 메시야와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는 종말론적인 사상들은 다른 헬라의 종교들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주’ Lord란 용어는 헬라 종교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묘사는 외래적인 영향의 결과라고 보았다.
④ 켈러(Martin Kähler)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였다. 그는 마가복음이 예수의 인격을 찾아보게 되는 전기가 아니라 “긴 서론을 가지 수난 설화”(a passion-stories with lengthy introduction)라고 주장하였다.
⑤ 불트만은 ‘역사’(Geschichte)와 ‘보도’(Historie)는 서로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예수의 객관적인 사실과 사도들의 케리그마의 내용인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다만 케리그마는 예수라는 사실만을 전제하고 있지 내용적인 연관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의미 있는 ‘역사’(Geshcichte)란 ‘역사적인 사실’(Historie)에 대한 자기 결단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즉 의미 있는 역사는 능동적인 인간의 실존적인 결단과의 만남이다.

4.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새로운 탐구’

-‘후기-불트만 학파’(Post-Bultmannian)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불트만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에 대한 어떠한 지식 없이도 설립되어질 수 있었다는 불트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적어도 어떤 중요한 연결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객관적인 ‘역사의 자료’(Historie)와 의미 있는 ‘역사의 사건’(Geschichte)의 내용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후기-불트만 학파를 탄생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객관적인 지식과 역사의 실체는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란 있을 수 없고, 역사의 진정한 지식이란 결국은 만나는 자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연결성은 비평적인 방식으로, 설정되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953년에 케제만(E. Käsemann)은 ‘역사적 예수의 문제’(Das Problem des Historischen Jesus)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서 케리그마에서 벗어나 십자가와 부활의 기초한 예수의 고양이 부활 이전의 예수의 선포 속에 어떤 발판을 갖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케제만은 결론적으로 초기 기독교가 전한 케리그마는 이 세상의 인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복음서에도 그 인물을 이 세상의 인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다시 물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푹스(E. Fuchs)는 비유를 분석함으로써, 그리고 로빈슨(J. Robinson)은 예수의 신앙에서 그러한 지속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후기-불트만 학파’의 관심은 예수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였느냐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고 행했느냐 하는 범주에 머물고 있었다.

5. ‘제 3의 탐구’

-불트만의 제자들에 의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새로운 탐구’(New Quest)는 유대교와 경계 짓기와 원시 그리스도교적 ‘이단’들과의 경계 짓기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신학적 관심에 몰두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정경자료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위 ‘제 3의 탐구’(the Third Quest) 학자들은, 불트만 학파의 예수 연구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면서, 1세기에 관한 모든 지식의 관점에서 신약 성서의 본문과 역사적 예수에 관련한 모든 학문적인 탐구를 수용한다. ‘제 3의 탐구’는 신학적 관심의 자리에 사회학적 관심과 비정경적 자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다. 또한 예수를 유대교 갱신 운동 가운데 하나를 창시한 자로 인정하고자 한다.


-로버트 펑크(Robert W. Funk)는 1975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보면서, 이 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지만 그는 두 종류의 참가자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사이비 탐구자들’(pretend questers)이고 다른 부류는 1950년대를 이어가는 ‘진정한 탐구자들’(reNewed questers)이다. 이러한 그룹으로 나누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달렸다.
① 그가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들의 예수 사이의 구별을 인정하는 가이다. 진정한 탐구자들은 정경 복음서들 속의 진정한 자료들과 진정하지 않는 자료를 구별하고자 한다.
② 자료에 관한 것이다. 탐구자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떠한 자료를 이용하는가? 만일 그가 신약 성서 외에 다른 자료들을 참조할 의지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탐구에 참여하는 것이다.
③ 이 탐구에서 위험에 처하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하는 문제이다. 교리나 교회의 교의 가운데 아무 것도 문제 삼지 않는 학자들은 사이비 탐구자들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학자들: 물(C. F. D. Moule)은 역사적 예수가 헬라의 구세주 제의의 영향을 통해서 또 다른 종류로 전이되었다고 주장하는 종교 사학파의 입장 안에서 변형되는 과정의 사상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예수 자신에게서 점차적으로 예수의 인식이 발전되는 과정을 추구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는 학자들로서 비어슬리와 머레이(G. R. Beasley and Murray), 그리고 스탠턴(Graham N. Stanton) 등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유대교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세계의 상황 안에서 예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과거에 무시되어진 물음들에 답하고자 한다. 특별히, “왜 예수가 유대 권위자들과 투쟁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왜 그는 로마인들에게 넘겨졌고, 정치적 혁명가로서 십자가에 달렸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① 버메스(Geza Vermes)는 예수를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유대인의 입장에서 예수를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예수를 유대의 카리스마적인 이적 행위자로서 규정하였다.
② 타이쎈(G. Theissen)은 그의 저서들에서 예수를 사회학적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를 대중적 순회선지자로 보려고 시도하였다.
③ 샌더스(E. P. Sanders)는 예수의 행위는 ‘복고적 종말론’(restorationist eschatology)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임박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신적 회복을 기대한 예언적 인물로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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