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독론 예수 한계 및 전망

▶ 역사적 기독론 예수 연구의 한계 및 전망

○ 역사적 기독론의 자료 한계의 문제

-오늘날 우리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제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에 관한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인물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해 다각도로 표현된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경에 포함된 네 개의 복음서를 제외하고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빈약한가를 알게 된다.


-1세기에 기록된 어떤 이방 저자들도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며, 기원 후 2세기에 기록된, 몇몇의 로마문학들만이 예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방 자료들과는 대조적으로 요세푸스를 포함하여 몇몇의 탈무드와 같은 후기 유대문서들은 예수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예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네 개의 정경 복음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2세기 이후의 작품들이고, 그것들은 정경 복음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더욱이 신약 성서에서 여러 작품을 기록한 바울조차도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참조/ 신약성서 외에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기 위한 자료들

1) 이방 자료

이방자료저자시기주요내용
Pliny112년경예수가 사람들에 신으로 경배됨
Suetonius117-122년경로마에 있던 유대인 중에서 Christus에 대한 설교로 소요가 있음
Tacitus115년경네로가 로마시내의 방화를 기독교인에게 전과, 빌라도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
Mara bar Serapion73년 직후처형당한 현자, 유대인의 왕, 새로운 율법의 창시자
Luciani165년경십자가에 달린 궤변가
Celsus175년경예수의 조상, 출생, 어린시절, 시역, 죽음, 부활 등 기독교의 교리를 비난

2) 유대자료

유대자료저자시기주요내용
요세푸스90년경현자 예수, 많은 사람을 끌어들임

3) 기독교 자료

기독교자료저자시기주요내용
도마복음70-140년경계시자, 영지주의적 교사
베드로복음서2세기 중반예수의 수난설화
마가의 비밀복음2세기 초무덤에서 한 젊은이를 살림
에비온파 복음서2세기 초동정녀 탄생 거부
히브리인의 복음서2세기 초성령을 여성적 형상으로 묘사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자료들을 선정할 때에,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동의하는 몇 개의 기초적인 방법들:


① 이른 시기의 것이 더 좋은 자료이다: 일반적으로 사건에 더 근접한 역사적인 자료들이 후기의 자료들 보다 더 정확한 것이다. [베드로의 복음서]와 [도마복음서]는 초기 자료에 의존하는 분명히 2세기 초에 생산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자료는, 바울, Q, 마가, M 그리고 L이다.
② 신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역사적으로 믿을만하지 못하다: 즉 요한복음의 기독론(1:1-14; 10:30)과 영생(5:22-24; 6:40; 14:9)과 같은 개념들은 뚜렷한 신학적 진술들이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되어진 신학을 지니고 있는 예수의 설명들은 역사적으로 덜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③ 저자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은 후기의 자료이다: 어떤 작품들에서는 저자의 경향성을 분명하게 탐지할 수 있다(예: [베드로의 복음서]는 유대 백성의 특성을 반대한다).
④ 차별성을 보여주는 자료는 신뢰할 만하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이 예수 시대의 유대교와 그리고 후기 기독교회의 교훈과 다른지를 묻는 것이다. 십자가, 사역, 치유, 죄의 용서 등의 행위는 예수에게 돌릴 수 있다.
⑤ 상황에 적합한가를 물어야한다: 고대의 문서의 경우에 있어서, 신뢰할만한 전승들은 그것들이 연관된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과 일치하여야만 한다. [빌립 복음서]는 세례와 성만찬의 성례전에 대해 영지주의적 해석을 제공한다. [도마복음서]도 이점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그러한 작품들은 예수 시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영지주의가 신학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이적의 문제

1) 복음서에 소개되는 이적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는 자료문제와 함께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기 위해 다루어야할 주요 주제이다. 복음서 전체의 3779절중에서 거의 1/5에 해당하는 727절이 예수의 이적행위와 연관되어있다(약 40개). 복음서 기자에 의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함이다(막 1:15). 하나님 나라는 지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상징(Dynamic Symbol)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통치에 대해서 언급한다. 하나님이 활동적으로 자신의 권세로 통치하며,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찾아오고 구속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을 죄와 질병으로부터 구속하므로 새로운 질서를 설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상징을 그의 선언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으로(눅 11:20; 17:20 이하; 마 11:12), 비유로(눅 13:20 이하; 마 13:33; 마 13:44-6; 눅 16:1-8), 그리고 치유로 선언하셨다. 복음서 기자들에 의하면 예수가 행한 치유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시작된 이후로 라이마루스 이후에 합리주의적 사고를 지닌 자들은 이적을 역사적 사실(fact)로 수용할 수 없었다.
① 불트만(R. Bultmann)은 “병과 또 그 치유는 모두가 자연적인 것이지 마귀의 장난 혹은 악한 귀신의 저주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전깃불과 무선 전신을 사용하고 현대 의학의 발견들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신약성서에 나타난 영들의 세계와 기적들을 동시에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② 맥(B. Mack)은 마가의 이적은 복음서 기자의 창조물로서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③ 크로산(J. D. Crossan)에 의하면 치유는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자들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상징(symbol)이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 영의 존재(귀신)를 믿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이적 이야기들을 상징적으로 읽었으나 현대인들은 그것을 우둔하게 문자적으로 읽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처형된 예수는 근처에 아무렇게나 매장되었다. 그 이상의 부활절이야기는 초대 교회의 창작물로서,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은유 중의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 “역사적 예수”와 “실제적 예수”

1) “역사적 예수”란 용어는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인식되어지는 예수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학자들의 학문적 노력을 통해서 재구성되어진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이 구성한 “역사적 예수”가 곧 “실제적 예수”라 말할 수 있는가?


2) “역사적 예수” 연구에 참여하는 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예수가 진정한 예수라면 그러한 예수를 어떠한 이유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했는가를 물어야한다. 즉 학자들은 자신들이 재구성한 예수가 그러한 가치 평가에 적합한가를 물어야만 한다.


① “예수 세미나”와 위에서 언급한 어떤 저자들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적 예수”는 결코 초기 교회의 선포의 대상이 될 수 없어 보인다. 만약에 예수가 현자 견유철학자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면(크로산, 맥), 다른 고대의 저명한 교사들(아리스톨, 플라톤, 세네카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를 기초로 종교가 설립되어질 수 있었는가?
② 만약에 예수가 세상의 종말이 곧 올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기만적인 묵시문학적 예언자였다면(프레드릭슨), 왜 초대교회는 세상의 구세주로서 그를 계속적으로 선포하였을까?
③ 만약에 그가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예언자였다면(타이센, 홀슬리), 왜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종교적 창립자로 예배하였는가?
④ 만약에 죽은 자로부터의 예수의 부활이 단순히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면, 왜 당시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확신하였던 많은 다른 성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만이 예배되어졌는가?

○ 상황(Context)과 텍스트(Text)

1)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전제 없는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지만(예: 하이데거, 슐라이에르마허), 해석자는 자신의 생각(상황)을 지나치게 텍스트에 부과해서는 안 된다.


2) “역사적 예수 연구사”를 보면,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는 자기 안경을 통해보는 퍼즐과 같았다. 시대에 따라 인식되어진 예수의 모습은 당시의 철학적 사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슈바이처(A. Schweizer)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민중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정치적 그리고 사회학관심 등, 예수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관심에 따라 변해오고 있다.


3) 독자는 자신의 상황(context)에서 텍스트를 보아야 한다. Context와 Text의 상관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성서해석의 원칙이며, 오늘날에도 성서가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힘인 것이다.

○ 방법론에 대한 평가와 전망

1) 크로산(J. D. Crossan)은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① 교차문화적 연구(Cross-Cultural Study);

② 역사적 연구;

③ 본문연구.


2) 크로산은 주변 역사와 다양한 자료를 통해 교차문화적 연구를 시도하고자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주변문화에서 형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신약성서를 읽을 적에 때로는 주저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서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문화의 저변에 자리 잡은 이야기와 기독교 서사시 이 두 이야기에 대하여 동시에 예스라고 대답하기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세기 상황을 제시하는 자료들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한가? 예를 들면, 크로산은 세례요한이 정치적 상황에서 죽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요세푸스를 인용한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역사는 믿을 만한가? 크로산에 의하면 마가의 이야기는 무시되고, 변절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역사가이기에 상당한 신뢰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교차문화적 연구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아 보인다.


3) 펑크와 “예수 세미나”의 학자들을 “진정한 탐구자”를 판단하기 위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① 그가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들의 예수 사이의 구별을 인정하는 가이다.
② 탐구자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떠한 자료를 이용하는가?
③ 이 탐구에서 위험에 처하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하는 문제이다.

교리나 교회의 교의 가운데 아무 것도 문제 삼지 않는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위한 진정한 “제3의 탐구자”가 아닌 사이비 탐구자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세미나”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복음서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구분하기 위해 복음서 안에 진정한 예수의 말씀과 그렇지 않은 말씀을 구분한다. 진정성을 지닌 말씀을 중심으로 “역사적 예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하지만 복음서 기자는 정확한 사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내용(색깔)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복음서를 사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진정성을 지니지 않은 말씀마저도 역사적 예수를 묘사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보았듯이 외경 자료들이 보조 자료로는 가능해도 정경보다 우선적인 자료로 인식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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