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적, 현대적, 통전적 기독론의 방법들 고찰
1. 고전적 기독론적 방법(로고스의 기독론)
고전적으로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 즉 신성에서 인성으로의 기독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독론의 방법은 연역법적이다. 고전적 기독론의 역사적 맥을 살펴보면,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들의 신약성서에서 발원하여 고대, 중세, 종교개혁, 개신교 정통주의를 거쳐 현대의 칼 바르트와 초기의 에밀 브룬너 등의 변증법적 신학자들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런 방법론으로 기독교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단도직입적으로 강력하게 선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신앙의 응답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불러일으켜 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질 수 있다.
고전적 기독론은 다음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비판되어질 수 있다.
①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오직 ‘아래에’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며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② 육신을 입으신 로고스가 아닌 육신이 없는 로고스로서의 계시 이전의 하나님, 즉 숨어 계신 하나님은 단지 사변적인 하나님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적 기독론은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를 인간의 역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역사적이고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만듦으로써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와 삶의 모습이 아니며 신적 존엄성과 영광에 모순된다는 인상을 준다.
③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판넨베르크의 지적대로 특히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그 당시의 유대주의와 전승사적 관련성이 여기서는 간과되어지기 쉽다.
④ 믿음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의문으로서, 케리그마와 믿음 속의 그리스도가 실제로 갈릴리와 유대 땅을 거닐었던 예수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근거에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한 믿음은 주관적 환상이나 전통 속에 화석화되어 버린 교조주의적 도그마일 수 있다.
2. 현대적 기독론적 방법
현대의 기독론의 방법은 대체로 ‘아래로부터’ 위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신성으로 나아가는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 방법은 귀납법적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아니하고,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그분의 삶, 사역, 죽음, 부활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통하여 종국적으로 성육신 사건과 신성의 고백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고찰함과 아울러 그 신학적 의미와 타당성을 숙고한다.
귀납적인 기독론은 크게 두 가지의 근본적인 가정 위에 서있다.
① 인성과 신성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으며 이 연속성 때문에 인성에서 신성으로 옮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② 귀납법적 기독론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관심을 복음서에 묘사된 인간 예수에게 모아졌는데, 이들은 역사의 예수 위에 기독론적 상부구조를 세우기 위한 기초인 하부구조로서의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역사적 모습을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의 가정은 각각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a. 첫 번째 가정은 위가 존재론적으로 아래에,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윤리적 의미에 종속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근본적으로 이미 역사 안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관념적으로 투사하여 확증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b. 두 번째 가정은 복음서 설화들의 형태에 대한 역사비평적 탐구의 결과, 이들 설화가 기독론 형성 이전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안에서 기록된 초대교회의 증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신학자들이 찾아 그려보고자 했던 “역사적 예수”의 상은 성서의 설화들로부터 재구성해 내기 어려운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기독론적이었다.
슈바이처에 의해 결정적으로 초래된 19세기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퇴조는 불트만의 양식사 비평으로 인한 성서의 사실성에 관한 심각한 회의주의로 인하여 더욱 가속화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득세하였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말씀의 신학과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해석은 위로부터 기독론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20세기 중반부에 들어서서 케제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후기의(변화된) 에밀 브룬너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잘 대변하고 있다. “예수 인식의 길은 인간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께 이른다.”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에 따라 기독론을 전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판넨베르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구원의 제공과 그리스도인의 응답이라는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
3. 통전적 기독론적 방법
통전적인 기독론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상호배타적이고 모순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파악하며 양자를 비판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론에 의해 가능하다.
① 연역법적인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부활의 주님으로서 오늘 교회의 설교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삶과 역사의 현장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고 그 길로 인도해 주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② 귀납법적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성서 안에 그려진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나사렛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고침과 이적을 행하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지상의 예수의 모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두 가지 기독론적 접근 방법이 상호순환적으로 통합되어질 때, 올바르고 통전적인 기독론이 구성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 연역법적이냐 귀납법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조화롭게 종합되어져야 한다.
두 가지 기독론적인 접근방법은 또한 “미래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의 방법에 의해 보완되어져야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변혁적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말미암는 실천적 기독론이다.
기독론적 과제는 미래의 인간 실존과 세상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변혁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실천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지 역사적 현실을 아는 것만도, 성육신 교리를 아는 것만도, 또한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만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더불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연대성으로부터 삶의 “바닥”에서 창조적인 변혁과 구원의 “미래를 향한” 실천적 행동과 헌신의 결단을 기독론의 출발점과 궁극적인 목표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온전하고 통전적인 기독론의 이론과 실천을 지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