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적으로 본 그리스도 사역 중 화해론

▶ 기독론적으로 본 그리스도 사역 중 화해론

○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결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없는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것이다.
본 발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화해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의 내용과 의미, 해석, 적용 등을 체계화시킨 속죄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 기독론적으로 본 화해의 의미

속죄(Atonement) ‘속죄’라는 어휘는 신약성서에 단 한번만 나타난다(롬 5:11). 그러나 이 말이 유래한 헬라어 카탈라게(καταλλαγη)는 자주 쓰여졌는데, 보통은 ‘화해’라고 번역된다. 속죄에 관한 구약적 어휘는 코페르(כפד)인데, 본래 ‘덮는다’ 혹은 ‘숨긴다’라는 뜻이다. 명사로 쓰여질 때는 ‘덮는 일’을 의미한다.


속죄라는 말은 현대에 와서는 좀 제한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단절되었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범죄 하였을 경우 제사장을 통하여 흠 없는 동물(송아지, 염소, 양, 비둘기 등)을 자기 대신에 제물로 드렸다.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죄를 고백함으로써 죄인의 죄가 희생 제물에게로 이전되었다. 그리하여 죄인은 죄사함을 받고 고난, 형벌, 희생을 면하게 되었다. 구약시대의 희생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즉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들이 받아야할 모든 고난, 형벌, 희생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화해(Reconciliation) 화목의 어원적 고찰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ἀλλάσσω] : ‘바꾸다, 변경하다, 변화하다, 교환하다’라는 뜻으로 사도행전 6:14, 고린도전서 15:51-52에서는 ‘변경하다’로 기록되었고, 로마서 1:23에서는 ‘교환하다’로 기록되었다. 단순한 변경,변화가 아니라 철저한 변경의 결과로의 ‘화목’을 의미한다.

[καταλλάσσω] : ‘바꾸다, 교환하다’는 뜻으로 특히 돈을 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사용될 때 적대관계에서 우호관계에로의 ‘화목’을 의미한다.(롬 5:10, 고전 7:11, 고후 5:18) [καταλλαγη] : ‘화해, 화목’을 뜻하며 하나님께 화목됨을 의미한다.(롬 5:11, 11:15, 고후 5:18,19) [ἀποκαταλλάσσω] : ‘화해하다’를 뜻하며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경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2:16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몸이 된 것을 말하며, 골로새서 1:22,21에서는 하나님과 화목케 됨을 가리킨다. [διαλλάσσω] : ‘바꾸다, 교환하다, 변경하다, 화해하다. 스스로 화목하다’를 뜻하며 마 5:24에서는 적대 관계가 종식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싸움을 한 후에 우정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한다. 화해는 원한을 우정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는 이러한 화해에 대한 많은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주된 주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 즉 화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

이처럼 속죄와 화해는 과정과 결과로써의 서로 다른 의미의 개념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 속에서 구분될 순 있지만 분리시킬 수 없는 서로 깊이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기독론적으로 본 속죄론의 여러 유형들

1. 고전적 유형 : 속전설(Ransom Theory)

고대 교회에서는 대체로 속전 이론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 이론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이 악마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속박하고 있는 악한 세력과 싸워 이겨 악한 세력을 정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해한 것을 말한다. Ibid., p. 9.
오리겐(Origen, A.D. 185-254)과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는 예수의 말씀(마 20:28, 막 10:45)과 우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전 6:20)는 바울의 진술을 주요한 본문적 근거로 사용한다.


그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탄과의 거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불하신 것이다. 사탄은 승리한 줄 알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패배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속임수로 사탄을 속였으며 승리자로서 인간을 속량하신 것이다. 그레고리(Gregory)는 십자가를 새를 잡기위한 그물에 비교하였고, 어거스틴(Augustine)은 십자가를 쥐덫으로, 그리스도의 피는 미끼로 비유하였다.

이 이론은 교회사 초기의 약 1000년 동안 크게 유행하였다. 기독교역사를 지배해 왔을 만큼 기독교 교리사 가운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탄은 인류에 대해 아무런 합법적인 권리를 갖지 않았음이 인식되었다. 사탄에게 속전이 지불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하나님이 속임수를 사용하신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중세기에 들어오면서 안셀름(Anselm)의 객관적 견해에 밀려 점점 교회의 신학적 교리안의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2. 객관적 유형 : 만족설(Satisfaction Theory)

십자가에 대한 객관주의적 관점에서의 해석은 11세기 안셀름(Anselm, 1033-1109)의 만족설에 의해 대표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영광을 손상시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예와 주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배상과 형벌을 요구하신다. 안셀름은 그의 저서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에서 속죄의 필연성과 성육신의 논리적인 필연성을 논증한다.

안셀름은 사탄이 인간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신화론적인 속전 교리의 견해를 거부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마귀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을 마귀에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마귀에게 속전의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하였다. 이것이 죄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 그런데 손상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간의 회개만으로 부족하다. 죄인 된 인간은 스스로의 행위로 자신의 죄를 속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통한 배상이나 보상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인간을 대표하며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적인 존재에 의해서 이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직접 죄 없는 인간이 되셔서 형벌을 받으시고, 죄로 인해 손상당한 하나님의 명예와 공의를 회복하여 만족을 이루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안셀름의 객관주의적인 해석은 대체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신학과 개신교 정통주의 교회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왔다.

중세기 로마 천주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안셀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의 사역으로 언급하고, 희생은 하나님의 존귀를 위한 적절한 일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퀴나스는 안셀름보다 만족설에 대한 개념이 더 넓었다. 그것은 곧 사람이 자신의 헌신과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데 무엇인가를 공헌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영향으로 천주교에서는 구원에 인간의 공로가 부가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사죄와 화목을 확보해 주는 희생 제사로 보았다(LW 13, 319;23,195).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LW 25, 249;36, 177;12, 365;51,92).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셨다. 그분이 나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할 수 있고 또한 말해야 한다(LW 24, 98).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LW 25, 45;51, 92;34, 119;53,219-220).


이와 같이 루터는 객관주의적인 해석을 보이지만, 안셀름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또한 강조하였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도 루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하였다.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무능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서운 저주를 받아 후손 대대로 이어져 오는 유전적 부패 상태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소멸된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대속적 제물이 되어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게 하는 대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진노를 받아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사랑이심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형벌을 그리스도가 대신 받게 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칼빈에게도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함께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진노와 심판을 앞서 있다.

3. 주관적 유형 : 도덕적 감화설(Moral Influence Theory)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주관적 유형의 해석은 12세기의 아벨라르드(Peter Abelard, 1079-1142)에 의해 시도되었다. 안셀름에 반대하여 아벨라르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손상된 명예와 정의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희생적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오히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죄악된 인간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인간들에게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깊고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화해시킴도 아니요 속죄도 아니다. 이것은 모두 논증적인 표현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는 어떤 객관적인 변화도 필요하지 않다. 단지 인간 자신 내부의 주관적인 변화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어떤 속죄나 형벌을 원하시지 않는다. 아벨라르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로 표현한다.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사실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는 가운데 깨달음을 주는 선생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화해와 용서의 근본이라고 강조한다.

도덕적 감화설은 그 당시 또는 그 후 몇 세기 동안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나 종교개혁 이후로는 기독교 내의 수많은 자유주의자들 쏘시누스(Faustus Socinus, 1539-1604)는 예수 그리스도를 도덕적 교수(모범설)로 봤으며 그의 신성을 부인했다. 후에는 유니테리안 운동(unitarian movement)의 기초를 세웠다. 19세기 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속죄를 우리 인간경험 안에 있는 한 사건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객관적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주관적 경험으로 보았다. 19세기 후반 부쉬넬(Horace Bushnell, 1801-1876)은 하나님은 인간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사람들을 회개에 이르게 함으로 따라서 속죄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의 결과로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하였다. 래쉬달(Hasting Rashdall)은 도덕적 감화설의 20세기 대표자로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갈보리 언덕에서의 예수의 순종의 의미와 결과를 강조한다. 이 상이한 형식을 취하였고 그 근본적 개념도 이와 동일한 도덕적 감화설이 많이 채용되어져 왔다.

○ 기독론적으로 본 속죄론에 대한 평가

 해석의 장점문 제 점
고전적 유형 속전설*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자가 되셨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해주셨다.* 인간의 소유권이 사탄에게 있는가? * 공의의 하나님이 사탄과 계약을 하고 사탄을 속였다?  
객관적 유형 만족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임으로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 하나님이 주체가 되셨다.* 하나님은 희생을 통하여 만족을 채우시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보다 만족이 우선시되는가?
주관적 유형 도덕적 감화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 인간의 내적인 변화를 강조하였다.* 죄에 대한 심판의 요소는 없는가? *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모범적인 인간일 뿐, 신성이 없는가?

○ 기독론적으로 본 그리스도의 사역 중 화해론 결론

이상으로 우리는 속죄와 화해에 대한 이해와 전통적으로 속죄론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속죄는 하나님이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행하신 화해의 행위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의 관계 속에 있다.


속죄론에 대해서는 고전적 유형의 속전설, 객관적 유형의 만족설, 주관적 유형의 도덕적 감화설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들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너무 중점을 두기보다, 통전적인 시각을 갖고 바라보며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더 풍성하고 깊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승리자이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무한하신 사랑이시다’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순절적 속죄론을 성령에 의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 나가는 신학적 작업을 해 나가야할 것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