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적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방법

▶ 기독론적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방법

○ 들어가는 말

신은 절대 주체이시고 절대 자유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에 그의 역사에 있어서 타자에 의해서 가동되어 피동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능동적으로, 그의 만고 불변의 섭리에 따라서 행동하신다. 따라서 그의 사역의 방법에는 그의 특유한 방법을 가지신다. 인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고 따라갈 수도 없는 신적 방법으로 인간과 역사와 세계와 우주에 대하여 역사하신다. 다음의 다섯 가지 사역의 방법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역


1) 성육신의 정의


요1:14에 있는 “말씀이 유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한 절에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본질이 다 밝혀져 있다.
성육신(Incarnation)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과 인간성을 가지고 지상에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즉, 그는 인간이셨다는 뜻이다. 신약 성경은 성육신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막 1:11, 특별히 ‘나는 … 이다.’ 문구들 – 막 14:62; 요 6:35; 8:12 등). 둘째,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신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골 1:7; 히 1:3). 셋째, 성육신 때문에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순종과 의존의 관계가 변화된 것은 아니다.

성육신이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성육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안에’와 ‘육신’)는 나온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썼고(요 1:14), 육신으로 오신 사실에 대해서도 썼다(요일 4:2, 요이 1:7). 바울은 그 사실에 대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그분이 오셨다고 쓰고 있다.


이사야 9: 6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에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예언했고, 사 7:14에서는 동정녀 탄생 히브리어의 알마(almah)는 성적으로 성숙하여 결혼할 수 있는 여자를 의미하고, 베투라(Bethulah)는 구분된 여자, 즉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처녀를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다(에 2:17, 겔 23:3, 욜 1:8). 외적으로 볼 때 알마는 처녀를 나타내는 전문적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처녀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를 언급하는 단어다(창 24:43). 알마가 처녀가 아닌 젊은 여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예는 한 군데도 없다.

또한 성육신의 수단으로서의 동정녀 탄생은 ‘마리아에게서’라는 표현을 위해 사용한 원어의 관계 대명사가 여성 단수형이며,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만 태어났음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증거된다. 이러한 동정녀 탄생은 탄생한 인격의 독특성을 보여주는 표시 역할을 했다.

한편, 성육신의 또 다른 증거인 예수님의 계보는 렘 22:30의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통한 저주 받은 혈통에서 예수님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을 지지해준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어느 누구도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을 논박한 적이 없다. Ibid., 354~5.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아들을 보내셨는가? 성육신의 목적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자. 성육신의 목적은 Ryrie와 Thiessen의 책의 내용을 합하였다.

    •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맺은 약속을 확증하고 이방인들에게 자비를 보여줄 목적으로 사람이 되셨다.
      ②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하여(시 103:13; 요 1:18; 14:9 등)
    • 구약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와 통치자로 계시된다. 그리스도는 여기에다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추가시키셨다.
      ③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하여(히 5:1~5; 2:10; 2:17, 18; 4:15, 16 등)
    • 그리스도는 신실하신 대제사장으로 활동하실 자격을 구비하기 위해 오셨다. 즉,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적격자가 되시기 위해 죄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모든 체험 속에 들어오실 목적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④ 죄를 없애기 위하여(히 9:26하반절; 막 10:45; 히 2:9; 요일 3:5 등)
    • 그리스도는 자기를 희생시킴으로써 죄를 없이 하려 오셨다.
      ⑤ 마귀의 역사(役事)를 파괴하기 위하여(요일 3:8; 히 2:14, 15; 요 12:31; 14:30 등)
    • 그리스도의 강림, 특별히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탄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사탄은 정복당한 적이다.
      ⑥ 우리에게 거룩한 삶의 모범을 주기 위하여(마 11:29; 요일 2:6; 벧전 2:21 등)
    • 이 목적은 많은 말로 어디서나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많은 구절 속에 함축적인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⑦ 재림을 대비하기 위하여(히 9;28; 계 5:6 등)
    • 신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러 올라가기 이전에는 죄의 현존에서부터 구원받지는 못했다. 더 나아가서 몸의 구속도 있다. 신체적 영생은 전적으로 미래에 있다.
      ⑧ 합당한 심판관이 될 수 있기 위해서(요 5:22, 27 등)
    • 모든 심판은 ‘주님의 인자(Son of man) 됨을 인하여’ 우리 주님이 수행하실 것이다.

    2. 선지자로써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방법

    1) 어원적 고찰


    구약에서 선지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의 뜻은 “보는 자”라는 뜻이었다. 이 말은 아카디아어 “나부”라는 말과 동일한 것으로 “선임받다” “소명받다”의 뜻이 있다. 이 아카디아어에서 나온 히브리어 “나비”는 “부름을 받은 자”, “신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이 단어는 창세기 20:7 ; 출애굽기 7:1; 신명기 13:1, 3,5,20,22 ; 민수기 11:29 ; 사사기 6:8 등 약 309번 기록되어 있다. 이 단어는 참선지자나 거짓 선지자에게 다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 주의 사자, 파수꾼이라고도 호칭하였다. 상기 단어들은 모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사자(messenger) 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선지자’라는 명칭은 헬라어로 프로페테스로서 이 단어는 전치사 프로(앞으로)와 동사 훼미(말하다)로 구성된 합성명사이다. 그러므로 어원적으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포하는 설교자 그리고 장차 이루어질 사변들을 미리 말하는 자를 가리킨다. 진실로 선지자는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대변자이다.

    2) 신학적 구조 안에서의 위치


    초대교회 때부터 계속해서 논쟁의 초점이 그리스도의 본질에 집중되었다가 11세기 안셀름에 이르러 비로소 그리스도의 사역론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이해한 것은 이미 바울의 화해론에서도 발견되며 그의 왕으로서의 위치는 부활 사건 후에 그의 제자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는 굽힐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나눈 것은 칼빈이었다. 칼빈은 사 55:4, 28:29, 렘 32:19, 히 1:1~2, 시 74:9, 단 9:24에서 예언자로서의 예수의 예고를 발견한다.
    예언자의 직무에 대하여 칼빈은 다시 성서의 기록을 증거로 삼아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판정에 의해서 알려진 것이며, 그리스도라는 칭호 안에 삼중직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예언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을 것에 대하여 말한다(사 61:1~2). 또한 누가는 눅 4:18에서 그는 가르치는 일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에 의해서 모든 예언이 성취되는 완전한 교리를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브루너와 루터, 홀라쯔도 그리스도의 세 직능을 언급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의 대다수의 루터파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그의 제사장직, 즉 중보자직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리츨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강조점을 두는가 하면 후란크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더 중점을 두었다.

    3) 결정적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예언자라고 할 때 그는 다른 어떠한 예언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예언자라고 할 때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고찰하기로 한다.
    첫째로, 그는 신언(神言) 자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신언성은 창조 사역 때 이미 나타나셨다. 하나의 의사 전달의 도구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신의 한 위(位)로서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다. 그 분이 야웨 신의 구속 섭리에 따라 때가 차서 성육신 하셨다. 그 분을 요한은 로고스라고 불렀으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신언 자체이다.
    둘째로,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신언을 전파한다. 이러한 전파 활동은 자체 밖에서 오는 어떤 요청이나 필요성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이요 신 자신의 행동이다. 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정지해 있지 않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실천자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움직이는 그리스도와 하나인 신언도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신언이 움직일 때 그것이 곧 신언전파란 행동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셋째로,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이적을 행하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을 하시므로 그의 직무를 수행했다. 의를 외치고 야웨 신에 대한 신앙을 촉구하고 다가올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고, 살기 위하여 야웨로 돌아갈 것을 부르짖다가 미움을 받고 천대받고 돌로 맞고 고독하고 실망하고 방황하고 상처를 입었다가 결국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십자가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참 예언자요 메시야이심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는 사건이 바로 그의 부활사건이었다.
    넷째로, 그리스도는 예언자로서 지금도 교회 안에서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성만찬식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신언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써 사역과 방법

    1) 성경적 근거


    구약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53: 5~6절은 최절정을 보여주며 12절에도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고 하셨다. 구약의 성취로 볼 수 있는 신약은 곳곳에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말하고 있지만 특히 히브리서는 가장 많이 말하고 있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고 4:14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고, 그 밖에 5:5 , 6:20 , 7:26 , 8:1 등에 말씀하셨다.

    2)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당신이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다.


    막 10:45에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고, 히 9:12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르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전 5:7 , 15:3엔 “우리의 유월절 양”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했으며, 이 밖에도 엡 5:2 , 요 1:29 , 요일 2:2 , 벧전 2:24 등이 있다. 이상의 성구들은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되실 뿐 아니라 그가 친히 우리의 제물이 되어 주심을 보여 주는 말씀인 것이다.

    3)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 완성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신다.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당신의 몸을 제물로 삼는 일로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 백성의 구원완성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우리의 변호인이 되셔서 마귀를 대항하여 성부 하나님께 빌어 주시는 고마우신 분인 것이다. 롬 8: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두 구절을 통해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고 구원의 길로 가도록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고난의 종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방법


      1) 왕이신 성경적 증거

      우린 기독론을 공부함에 있어 모든 교리가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 그리스도의 고난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마음이 어두워서 이것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쉽다. 사단은 이런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제가 베드로를 빙자하여 그리스도가 고난 당한다는 예언을 좋지 않게 여겨 “그러지 마옵소서.”라고 하다가 주께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야단을 맞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주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전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으면 인류는 전멸하기 때문에 베드로의 만류는 제자로서는 인정어린 것이지만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린 그리스도의 고난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은혜를 받아야겠다.

      2) 예수와 고난의 종


      막 12:39 이하에서 예수는 단지 자기의 죽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까지도 말하고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와 매우 중요한 대화를 나눈 뒤에 예수는 자기의 죽음을 세 버니나 말했다.(막 8:31; 9:31; 10:33) 그에 의하면 인자는 다니엘이 말한 대로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와서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막 18:4에서도 자기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직접 사 53:12을 인용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간접적으로 사 52~53장을 암시한 구절이 많이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예수는 분명히 메시아 의식과 고난의 설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서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록을 중심해서 판단해 볼 때 예수가 가졌던 메시야 의식은 그가 세례를 받았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때 그는 이미 자기가 고난의 종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 이해는 예수 자신의 언행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초대교회의 산물이라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3) 초대교회가 이해한 고난의 종


      공관복음서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예수에 대한 “고난의 종”의 상이 요한복음에 있어서는 이사야서에서의 인용 구절을 통하여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요 12:38에 사 53:1이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보아 요한은 예수가 고난의 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있어서는 그러한 확신이 기정사실로 인정되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은 고난의 종이란 확신 위에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쿨만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유대교는 고난의 종을 메시야와 연결시켜서 이해했다. 둘째로, 예수는 자기를 고난의 종이라고 직접 부르지는 않았으나 그가 대속적 고난과 죽음을 당할 것과,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이 야웨 신과 가졌던 본래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셋째로, 초대교회는 예수가 주의 종(ebed Yahweh)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넷째로, 바울은 예수의 구속적 죽음을 그의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다섯째로, 고난의 설을 핵심으로 한 그리스도론은 신약성서가 다 기록된 후에는 별로 발전되지 못했다.
      쿨만이 지적한 대로 예수가 분명히 메시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메시야는 고난을 받는 후의 모습으로 지상 생활을 가진다는 것과 그 종은 자기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대신 죽는다는 것과 그 죽음의 결과 신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있었던 본래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는 믿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자신의 신념이었고 초대교회의 믿음이었다.

      4. 왕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방법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왕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시 2:6, 사 9:6~7, 행 2:30~36).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많다. 구약성경은 장차 한 왕이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예언된 그가 오셨다.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민수기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이사야 9:6, 7, “(그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다니엘 7:13, 14,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 . .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미가 5:2,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스가랴 9:9, “시온 딸아 크게 기뻐하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왕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다스리는 머리 곧 주(主)가 되심을 증거 한다. 누가복음 1:32, 33,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태복음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마태복음 27:11,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요한복음 18:37,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마태복음 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에베소서 1:22,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요한계시록 1:5,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요한계시록 11: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요한계시록 17:14, 19:16, “만왕의 왕.” 요한계시록 22:1, 3,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

        2)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영적 왕권


        주님의 영적 왕권은 주의 택하신 백성과 그 집단인 교회에 대한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고전 11:3과 엡 1:20~22과 5:23 등에 “교회의 머리” 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영적 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3) 그리스도의 우주에 대한 왕권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27절, 에베소서 1장 20절에서도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쳐 준다. 우주적 왕권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의 원래의 왕권과는 미치는 영역이 동일하지만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왕권은 그이 교회를 위하여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께 맡겨진 우주를 다스리는 권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로서의 개인과 국민의 운명을 다스리며, 세상의 생활을 지배하시며, 그의 왕권을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위험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보호하신다. 이 왕권은 하나님의 나라의 대적들을 물리칠 때까지 지속될 것이며, 그 목적이 성취되면 우주적 왕권은 성부에게로 귀속될 것이다(고전 15:24~28).

        6.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사역의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그것도 인간으로 오셔서 그의 여러 가지 사역들을 통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심으로 그의 역사를 이루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의 사역은 성육신하시고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삼중직인 선지자, 대제사장, 왕을 겸직하시고 고난 받으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완전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지금도 함께 하시는 그 분의 도우심과 능력이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구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 5장 31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그 분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4:12절 말씀을 상기시켜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 참 고 문 헌 ◆
        이종성, 「 그리스도론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4
        조영엽, 「 기독론 」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임종만 「 기독론 」성광문화사 1980
        IVP. 「성경사전」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2.
        디이슨, 헨리. ⌜조직신학강론⌟ 권혁봉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라일리, 찰스 C. ⌜평신도 신학입문⌟ 이한규 역,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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