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와 선포

▶ 사도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와 선포

1. 바울의 기독론의 이해 :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바울은 종종 그의 서신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뜻이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고백하는 대표적인 호칭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속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그가 쓴 모든 서신에서 바울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그것은 고린도전서 15:3절 이하에서만 제시되고 있는 특이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셔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셨다고 말한다.


사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예수님 당대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낯선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오히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둘째 아담인 혹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대변하는 아담이 범죄 함으로써 아담과 함께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범죄 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아담과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로마서 3:25-27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이며 바울 신학과 기독교 구원교리의 절정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C.E.B. Cranfield, The Epistle to Romans I (Edinburgh: T,& T. Clark, 1982),199;U.Wilckens, Der Brief an de Romer (EKKNT;2d ed ; Cologne: Benziger; Neukirchen – vluyn Neukirchener Verlag, 1987),199; O. Kuss, Der Romerbrief (Regensburg: friedrich Puster, 1957), 110. 참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3:25-26절 제시한다. (롬 25-27)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서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바울은 자신의 다메섹 사건 체험의 빛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화목이란 말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명사 화목은 롬 5:11; 11:15; 고후 5:18,19에 나타나고 롬 5:10,10; 고후 5:18; 19,20; 엡 2:16, 골 1:20:22에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화목에 대한 가르침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본문임을 알 수 있다.

(1) 화목의 상대자는 창조주 하나님과 자신의 피조물인 세상(인간)이다.


(2) 화목의 주체 자는 하나님이시고 화목을 필요로 하는 자는 인간이다. (R,P. Martin, Recomciliation: A Study of Paul’s Theology (Atlanta: john Knox,1981),103 -7;Seyoon Kim, “God Reconciled His Enemy to Himself: The Origin of Paul’s Concept of Reconciliation, “in The Rood from Damascus, The Lmpact of Paul’s Comversion on His Life, Thought, and Ministry, ed. R..N, Longenecker (Grand Rapids: Eerdmans, 1997),p.103. 참고)

(3)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에게 화목 시키시기 위해 인간의 어떤 행위나 참회나 제물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화목의 중보자로 요구하신다.


(4)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5) 이 화목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6)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에게 화목의 말씀 과 화목의 직책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화목할 것을 권면한다.


2.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 : 부활하신 주 (主)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님을 빈번하게 그리스도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주’ 로 제시한다. 구약성경에 있는 이름 ‘야훼’가 한결 같이 주님을 가리키는 ‘주’로 번역되었다. 유대인 사회에서 ‘주’는 이미 고귀한 하나님의 호칭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은 이제 영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께 돌아가면 영이신 주님께서 구약 성경의 참된 의미를 잘 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하신다.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주님을 영, 곧 성령과 일치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제시되는 일치성은 본체론적인 존재의 일치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구속 사역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일치성이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새로운 존재양식과 새 시대에 있어서 영으로서의 그의 사역이다. 사역의 원천인 성령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 체험을 통해 구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담대한 개방성과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새 시대에 속하는 자는 그의 영이신 성령 안에 있는 자요, 성령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요, 성령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요,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바로 성령을 소유한 자가 된다(롬 8:9-10;고전 12:3).


결국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인격과 사역을 증거 하는 복음으로부터 그 복음을 통해 그 복음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으며 그렇게 복음을 통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인 부활하신 주님의 형상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3.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 : 하나님의 아들 (The Son of God)


그리스도와 주와 함께 바울의 예수 이해와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다.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것이 예수님의 메시야적 자기 이해에서 출발 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의식하지 않았고 또한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신격화시켰던 것인지에 논란 이제기되고 있다. 하나님 아들을 포함하여 초대교회의 기독교회의 중요한 기독론적인 호칭은 예수님 자기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 갑종,“ 나사렛 예수 자기이해”[나사렛예수], p.91-146 참고).


누가가 전하는 사도행전 9:20에 따르면 바울은 다메섹 사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 그가 깨달음을 전파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에게 계시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도록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메시야 ,왕, 선지자, 인자, 등과 함께 유대인들의 메시야 사상에 나타나는 중요한 메시야적 호칭주의 하나였다.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메시야 이자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예수는 부활로 인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주장을 전개 한다. (Kasemann, Romans (Grand Rapids: Eerdmans, 1980), p.12-13 참고.)


옛 시대와 새 시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의 사역상의 신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빌2:5-11,고전15:45, 엿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서의 사역이다. Cf. Cranfield, Romans I, 58-61: F.F.Bruce, Romans (Grand Rapids::Eerdmans,1985).69.우리말 개역성경은 ‘능력을 가진’ 이란 말을 그 앞에 있는 분사 ‘인정되셨으니’를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Dunn 과Moo의 지적대로 ‘아들’을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온당하다.

주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다 라고 선언한다. (E. Schweizer, “TDNT VI, 418-420; Peter Stuhmacher,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 (Gottingen, 1992), p.355-356 참고.)

부활 이후에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기간 동안에는 오히려 예수 자신이 성령을 자신의 영으로 주도하신다는 것이다. (E.E. Ellis, “The Spirit and the Gift, ” Pauline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1989), p.29 참고)

4)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 : 먼저 계신 자 (The Preexistent One)


Hegel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바울 이전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바울 가까이 있는(짐작건대 수리아에 있는 )공동체’로부터 바울이 두 가지의 문형-즉 선재하신 아들을 이 세상으로 보냄의 형식(sending formula)과 그 아들을 죽음에 내어줌의 형식(giving-up formula)-을 취하여 왔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서문은 예수님이 성육하시기 전에 이미 ‘로고스’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창조의 중보자가 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가르침을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구절이 흔히 바울의 기독론의 최고 정상 이라고 불리는 골로새서 1:15-20 이다. (“그는(그리스도) Paul Beasley-Murray, “Colossians 1;15-20:An Early Christian Hymn Celebrating the Lordshop of christ, ” in Pauline Studies, 169 . ‘그는’이란 인칭대명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1:13로 볼 때 부인할 수 없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나 신자니 만물이 그에게서 (그 안에서 )창조 되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는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을 계시하는 자이며, 또한 그런 점에서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와 분리되지 않는다. 유대교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서 7:25-26에서도 인격화된 지혜가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암시하는 것들이 있다.

◈ 에릭슨: 기독교신학 기독론 :밀라드J 에릭슨저 P86-87. 참조,

1)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실재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던 반면 예수는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믿음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정통주의자(예수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지닌 호모우시오스라고주장하는)아리안주의 호모이우시오스임<homoiousios;유사본질주장)들과 반 아리안주의 (유사한 본질 을 주장 사이의 논쟁은 가끔 조롱거리가 되었다. Edward Gibbon, History of Christianity (New York: Peter Eckler, 1891), P. 371.)
2) 구원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3)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연합 되었다.

4)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는 단순히 창조물 중에서 높은 분이 아니라 아버지와 동일한 수준을 지닌 하나님이시다 그도 아버지처럼 우리의 찬양과 예배 그리고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자들은 이미 그가 누구이며 그에 알맞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인정한다.

◈ 결론


사도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해 그는 자신이 핍박했던 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에 의해 영광스러운 주님으로 높아지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다메섹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바른 인격과 사역을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하는 소명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 사건 이후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선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에서 바울의 모든 기독론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서신에 나타나는 아담 기독론, 그리스도의 선재성, 하나님의 형상됨은 그가 유대교 전승과 구약성경을 통해서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후자가 다메섹 사건의 기독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인생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듯이 우리의 삶 가운데도 진정한 터닝 포인트가 있어야겠다.

*참고 자료


-Developments in Earliest judaism and Christianity , 79 – 115; 최 갑종, [나사렛 예수](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94-103
-C.E.B. Cranfield, The Epistle to Romans I (Edinburgh: T,& T. Clark, 1982),199;U.Wilckens, Der Brief an de Romer (EKKNT;2d ed ; Cologne: Benziger; Neukirchen – vluyn Neukirchener Verlag, 1987),199; O. Kuss, Der Romerbrief (Regensburg: friedrich Puster, 1957), 110.
-R,P. Martin, Recomciliation: A Study of Paul’s Theology (Atlanta: john Knox,1981),103 -7;Seyoon Kim, “God Reconciled His Enemy to Himself: The Origin of Paul’s Concept of Reconciliation, “in The Rood from Damascus, The Lmpact of Paul’s Comversion on His Life, Thought, and Ministry, ed. R..N, Longenecker (Grand Rapids: Eerdmans, 1997),103.
-Cf. Cranfield, Romans I, 58-61: F.F.Bruce, Romans (Grand Rapids::Eerdmans,1985).69.우리말 개역성경은 ‘능력을 가진’ 이란 말을 그 앞에 있는 분사 ‘인정되셨으니’를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Dunn 과Moo의 지적대로 ‘아들’을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온당하다.
-E. Schweizer, “TDNT VI, 418-420; Peter Stuhmacher,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 (Gottingen, 1992), 355-356.
-E.E. Ellis, “The Spirit and the Gift, ” Pauline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1989), 29
-Paul Beasley-Murray, “Colossians 1;15-20:An Early Christian Hymn Celebrating the Lordshop of christ, ” in Pauline Studies, 169 . ‘그는’이란 인칭대명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1:13로 볼 때 부인할 수 없다.
-유대교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서 7:25-26에서도 인격화된 지혜가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에릭슨: 기독교신학 기독론 :밀라드J 에릭슨저 P86-87. 참조
-Edward Gibbon, History of Christianity (New York: Peter Eckler, 1891), P.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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