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결과 : 기독론의 핵심인 속죄 및 화해론

▶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결과 : 기독론의 핵심인 속죄 및 화해론

속죄에 대한 이론들

    -속죄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신학이 객관적인 면에서 주관적인 면으로 옮겨지는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속죄는 구원을 가능케 하고 교회론과 종말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신학은 유기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하나의 입장으로 살펴보면 그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거나 골격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신론, 기독론에 관한 교리가 속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죄론까지 포함해서 넓은 의미로 정의 내리자면 인간론 역시 속죄론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인간이 영적 온전함을 지니고 있다면 약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나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에 좀 더 근본적인 어떤 일이 행해져야만 한다.

    1. 소키누스주의 이론 : 모범으로서의 속죄

    1) 이들은 대속이라는 개념을 모두 부인했고 다음의 이유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무효화했다.


    ① 예수의 지상 사역이 예언자적이었다는 주장
    ② 예수의 제사장적 역할이 하늘에서의 왕적 기능과 별 다를 것이 없는 동일하다고 강조
    이들에 의하면 예수의 새언약이 대속적 죽음이기보다 절대적인 용서의 의미로 해석된다. 예수의 죽음이 주는 가치는 아름답고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고 부활의 이유는 우리에게 약속했던 바를 입증하며 그가 가르쳐 주고자 한 것을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벧전 2:21과 요일 2:6을 예로 들었다.


    2) 소키누스주의의 속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몇 가지 개념

    ①펠라기우스적인 견해
    인간은 영적,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의지를 실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②하나님은 보복적인 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범죄한 자나 그들을 대신하는 어떠한 속죄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③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한 인간으로 보는 개념이다.
    그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한 인간에게 요구한 것을 완성한 최고의 모범이었다. 위대한 계명을 단순히 말로써가 아닌 자신이 행함으로 인간이 그것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셨다.
    그의 이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은 인간에게 필요한 두 가지 욕구 충족을 준다.
    a,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어떻게 펼칠지 하나의 모범으로써의 욕구
    b, 예수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그의 죽음은 그러한 사랑이 인간 완성의 영역 안으로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그들은 속죄란 단순히 은유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신앙이 인간과 하나님의 교제에 필요한 전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과 예수를 죄악 세상에 몰아넣고 처벌하신 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2. 도덕감화설 :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명으로서의 속죄

    1)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예시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신적 차원을 강조한다.

    피터 아벨라드(Peter Abelard)가 안셀름(Anselm)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발전했는데 후에 미국에 서는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이 영국에서는 헤이스팅스 래쉬달(Hastings Rashdall)이 이 이론을 발전시켜 갔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함, 공의보다 사랑을 강조하여 인간의 문제란 하나님의 법을 어김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의 태도에 있다고 했다. 소외된 인간의 모습은 불순종하는 인간,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회복한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뤄질 것이다.


    2) 부쉬넬은 죄에 대해 치유 받아야 할 일종의 병이라고 했다.

    객관적인 이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을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으로 이해했고 부쉬넬은 그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의 목적은 하늘나라를 인간 사이에서 건설하는 것과 결국 새로운 세계를 완벽하게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을 그 가운데 인지하게 된다고 했다. 예수가 실제로 이 땅에 와서 한 사역은 영혼에 대한 치유이다. 죄가 인간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3) 그의 죽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필요를 충족시켰다.


    ①하나님이 다가오실 때 범죄한 인간이 보여준 반응은 불안, 회피, 두려움이었다.
    부쉬넬은 우리가 회복되었다 라고 표현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고 했다.
    ②개인적인 죄와 그 결과로 참회에 대한 순수하고 깊은 자각이다.
    ③인간은 또한 영감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실현할 거룩성에 대해 추상적인 표현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실현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것을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설명 가운데서 볼 때이다.
    부쉬넬에 의하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변화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는 하나님도 죄로 인해 고통 받으셨다는 깨달음이다. 그러기에 죄로 고통 당하는 우리를 보시면서 반응은 비난이 아닌 동정이다.

    3. 통치설 :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증명으로서의 속죄

    1) 주창자는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이다.

    그가 본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은 확실한 법들을 제정하시는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이시고 죄는 그러한 법에 대한 위반으로 마땅히 처벌 받아야 될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속성으로 범죄한 인간을 용서하실 수도 있다. 그에 따르면 각각의 범죄에 하나님이 채권자나 주인이 아닌 통치자로써 간과할 수 없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 즉 속죄가 용서할 수 있는 근거와 도덕 통치 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는 속죄 모두를 이룰 수 있는 속죄가 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리자로서 예수에게 죽음의 형벌이 주어 진 것이 아닌 형벌 자체를 대신한 것이라고 본다.

    2)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에 대한 일종의 속죄이고 예수의 죽음이 처벌을 불필요하게 했다고 본다.

    그는 하나님이 처벌만 하여서가 아니라 도덕적인 통치가 요구되기에 죄를 벌하시는 것이고 형벌의 중요한 점은 짓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그는 반율법주의를 맹렬히 반대했다.
    통치설의 하나의 객관적 요소는 속죄로 우리를 처벌한 필요성이 없어지고 도덕 통치와 율법에 관 한 권위가 주창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검토해 볼 때 놀랍게도 그것이 성격적 근거가 부족하다 는 사실로 결국 통치설은 성경의 일반적 가르침과 원칙들로부터 어떤 것을 추리해내서 진술해 나가는 것이다.

    4. 속전설 : 죄악을 물리친 승리로서의 속죄

    1) 오리겐(Origen)과 닛사의 그레고리(Gregry of Nyssa)에 의해 발전되었고 초기교회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기본적인 견해였다.


    -오리겐 : 성경의 역사 = 한편의 거대한 우주드라마, 속죄 = 극적인 견해
    ① 사탄은 자신이 예수의 영혼을 지배하는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부활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했다.
    ② 마귀는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으로 인류가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롭게 되었고 그의 죽음과 부 활로 완벽하게 구원 받으리라는 몰랐다.
    ⇒사탄은 인간을 놓아 주었지만 대신 잡아두기로 한 예수 또한 자신이 지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참조/
    a. 그레고리 :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유지하려고 했고 사탄이 더 값어치 있는 포획물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요구하여 거래가 일어났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사탄에게 숨겨진 은밀한 비밀 이었다. 그는 하나님, 사탄이 모두 속였다고 하면서 단지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한 대가 와 그일 이면의 동기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b. 어거스틴 : 그리스도의 신성이 사탄을 속이기 위해 위장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사탄은 단지 자 신의 교만으로 희생되었다고 했다.


    2) 그러나 이 이론에 반대하던 사람도 있었는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와 아타나시우스(Atanasius), 다마스쿠스의 요한(John of Damascus)이다.

    요한은 속죄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승리이고 인간을 얽매었던 힘과 하나님에 의해 얽매임을 당한 힘은 마귀가 아니라 죽음이라 했다. 속전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5. 만족설(Satisfaction Theory) : 아버지께 대한 보상으로서의 속죄

    1) 이 이론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성이 지닌 원칙을 만족시키기 위해 죽으셨다고 하며 라틴 신학자에 의해 시작되고 안셀름에 이른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고해성사를 발달시켰는데 어떠한 형태든 보복(Satisfaction)으로 죄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 있던 시대에 그는 하나님을 봉건적 군주로 묘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에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 적절한 만족을 요구하시는 분으로 주장했다. 또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되사 와야 할 필요도 없고 단지 인간을 유혹한 마귀를 벌주는 것이다.

    2) 안셀름 : 죄 – 하나님에게 기본적으로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것을 빼앗은 인간은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릴뿐더러 그로인한 상처까지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손상된 명예는 인간에게 벌을 주어 회복하거나 인간 편에서 이뤄진 만족을 받아들임으로 바르게 될 수 있다고 하며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견해를 수용했다.
    사탄에게 패배한 인간이 과연 만족을 줄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할만한 자격을 지닌 누군가가 인간을 위해서 무언인가를 해야 했다. 효과적이기 위해 모든 피조물들이 할 수 있는 훨씬 많은 만족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자면 하나님이면서 인간인 누군가에 의해 이뤄져야 했고 그래서 성육신이 필요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인간으로 죽을 수 없는 분이지만, 그만이 인간의 죄를 위 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진정한 만족일수 있다.


    3) 구약 성경의 희생 제사 제도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은 구약의 희생 제사와 관련해서 보아야 하는데 이 희생 제사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필요했다. 속죄라는 히브리 단어는 “덮다”라는 뜻으로 희생 제사는 하나님을 달래기 위해 제공되었다. 죄인을 위한 대속으로 드려졌다는 사실이다. 죄인의 죄를 담당했다. 희생 제사가 효과를 나타내려면,
    a. 제물이 되는 동물은 흠 없고 순전한 것이어야 한다.
    b. 속죄함을 받는 사람은 그 제물 위에 손을 얹어야 한다. ⇒ 이것은 죄의 전가이다.
    c. 희생 제사와 제물은 제사장에 의해 받아 들여진다.
    구약의 율법에 관한 말씀 및 예언에 관한 말씀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4) 신약 성경의 가르침


    ① 복음서들
    먼저 예수 자신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역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언급했다. 그는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속죄이며 아버지 역시 이 일에 관여하고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고 했다.(요 3:17) 또 자신의 삶과 죽음이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하며 이사야 53장을 인용하여 자신을 고난의 종과 동일시하였다. 예수 자신은 죽음이 속전을 지급한 것으로 또 자신이 우리를 대속하는 자로 생각하고 있었다.(요 15:13) 요한복음 17:19에서 그는 자신이 희생 제물임을 알고 있었고 세례요한 역시 유사한 진술을 하였다.(요 1:29) 예수는 그가 참 생명의 원천이며 제공자라고 하며(요 17:3) 상징적으로 “자신의 몸을 먹는 것”으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② 바울서신들
    바울도 복음서와 같이 예수의 사랑과 사역을 하나님의 사랑과 사역으로 동일하게 취급한다.(고후 5:19, 롬 5:8, 8:3,32) 또 아버지에 관해 말한 것처럼 아들에 관해서도 말한다.(고후 5:14, 엡 5:2) 반면 그의 진술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역시 분명히 눈에 띄는 주제였고 그래서 속죄가 필요했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사로(고전 5:7, 엡 5:2, 롬 3:25,5:9, 엡 1:7,2:13, 골 1:20). 생각하여 언급했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주장한다(롬 8:32, 5:8, 엡 5:2, 살전 5:10) 마지막으로 그 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화목 제물로 언급하여 그리스도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달리기 위해 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5) 다드(C.H.Dodd)

    [성경과 헬라인]에서 예수의 죽음은 화목 제물이 아니라 롬 3:25에 나오는 구절처럼 속죄였다고 주장했다. 래드는 ίλάσκομαι가 실제로 화목 제물을 언급 한다고 주장했다.
    ① 요세푸스, 필로처럼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 저자들의 비성경적인 문헌에도 이 동사는 “화목 제물”의 뜻으로 쓰인다. 교부들 역시 그렇게 사용했다.
    ②스가랴 7:2,8:22, 말라기 1:9에서 έξιλάκομαι가 화목 제물로 쓰였는데 여기에 대한 주석에서 다 드는 단어사용법에 약간의 예외가 나타난다고 했다.
    ③ 70인역에 “하나님”이 동사의 직접 목적어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구약에는 “죄”가 동사의 직접 목적어로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④ 구약에 이 단어가 실재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문맥 속에서 많이 등장한다.
    만약 다드의 의견과 반대로 바울 서신 중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불가능한 해석들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속죄 죽음에 관해 바울은 죄를 덮어주고 부패함에서 깨끗하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시고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희생 제사이다.

    6) 속죄의 근본 의미


    ① 희생제사(Sacrifice)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개념으로 더 보충하면 히브리서 9:6-15,28에서 그리스도의 사역 = 속죄의 날, 그리스도 = 대제 사장, 희생 제물=자신의 피, 그리스도의 희생제사 = 영원한 효과를 가져 온다. 단 일회로 전 인류의 죄를 구속한다. 또 히 10:5-8에 보면 번제물 = 그리스도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림, 그리스도 의 죽음 = 속죄제로 보면서 우리는 그가 당하신 능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도록 권면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시작된 그의 중보는 우리를 위한 그의 제사장적 중재 형태로 지금까지 계속된다.


    ② 화목 제물(Propitiation)
    이 개념을 바울 서신에 국한하지 않고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희생제사제도는 주 앞에서 행해졌고 효과를 나타냈다.


    ③ 대속(Substitution)
    그의 죽음이 과연 우리의 대속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가?


    a. 사 53장을 통해서 볼 때 또 벧전 2:24에 근거해볼 때 우리의 죄가 그에게로 전가된 것이다. 틀림없는 대속의 개념이다.
    b.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의 관계를 명확히 나타내는 전치사들이다. 대속이란 뜻을 가장 명확하게 전하는 전치사는 άντί인데 “대신에”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전치사를 사용한 구절들을(눅 11:15, 마 2:22, 고전 11:15) 볼때 이 전치사가 대속의 개념이 분명히 나타난다.
    또 ύπέρ의 전치사도 마찬가지다(롬 5:6-8,8:32, 갈 2:20, 히 2:9, 요 11:50, 고후 5:15, 갈 3:13).

    ④ 화해(Reconciliation)
    그리스도의 죽음은 또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가져왔다. 과연 도덕 감화설자들이 하나님의 주된 사역이 화해하는 주장이 맞는가?
    a. 성경에서 서로 화해할 때 적대감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마 5:23-24)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지만, 화해케 하기 위해서 일하신다.(롬 11:15)
    b. 세상과의 화해가 가능해진 것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인과의 화해로 이스라엘의 버림과 대조를 이루어 화해는 하나님의 행위 곧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상을 받아들이며 특별히 다스리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7) 형벌 대속설에 대한 반대들


    ① 속죄 필요성 개념에 대한 반대
    왜 하나님은 죄를 쉽게 용서하지 않는가? 라고 제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실로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적으로 하나님이 죄를 다른 의미로는 용서해 주시지만, 어떤 형벌도 요 구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전 우주의 도덕성인 선악의 차이를 사실상 파괴하게 될 것이다.

    ② 대속 개념에 대한 반대
    대속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재판관이 피고에 대한 형벌을 무고한 사람에게 내리는 가정 하에
    a.예수는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해서 아버지의 진노를 달랜 것이다.
    b.예수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사역은 아버지 또한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은 재판관이 판결을 내린 후 법복을 벗고 내려와 자신이 피고의 자리에 와서 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

    ③ 화목 제물 개념에 대한 반대
    죄로 인해 진노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이 설득하여 사랑과 용서의 정신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삼위일체의 위격들 간의 내적 갈등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화목 제물이 진노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노의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표현이 맞다. 즉 하나님 은 의로우셔서 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시지만, 그 사랑이 그것을 치르셨다. 화목 제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빚어낸 열매이다. 그래서 화목 제물은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④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는 개념에 대한 반대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반박하는 주장이다. 만일 우리와 그리스도가 분리되고 떨어진 관계라면 위 주장이 옳지만, 믿는 사람은 실제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의로움을 전가한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만드는 문제이며 따라서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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