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론 논쟁과 니케아 회의, 칼케톤 회의 논지들
1. 기독론 논쟁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리스도는 사람과 하나님으로,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한 위에 신인 두 성이 있다는 개념에 포함된 난제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충분히 논의 되지 않았고 다만 논쟁의 과정을 통하여 인식되었다. 기독교 공동체는 긴 세월 동안 논쟁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성(性)과 위(位)에 관한 원만한 신조를 확정했다.
1) 니케아 회의 이전의 논지들
1.1. 에비온파(Ebionites; A.D.107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자연적으로 생각하든, 초자연적으로 생각하든 단순한 하나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과 특수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이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이 그에게 내려진 것이다. 에비온주의는 기독교회권 내에 있는 유대교의 한 분파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정하는 것은 그들의 유일신 사상과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표현이다.
1.2. 도케테파(Docetae; A.D.70-170)그리스도의 인성 부인
도게데파는 제 2세기의 노스틱파(Gnostics)의 대다스와 제 3세기의 마니교도들(Manichees)과 함께 그리스도의 인간적 육체의 실재성을 부인하였다. 이 견해는 그 배후에 물질은 악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물질이 악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순결하시다면 그리스도의 인간적 육체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환영일 뿐 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도게데파의 주장은 교회에 소개된 한낱 이교도적 철학에 불과한 것이다.
1.3. 아리안파(Arians;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정죄)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 부인
아리안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의 완전성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 자신 안에 있는 인간성과 일체를 이룬 로고스(Logos)로 보았다. 즉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신격을 소유한 자로 보지 않고 창조된 피조물 가운데 최초이면서 최고의 존재로 보았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신분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오해한 데서부터 생긴 주장이며 그의 일시적인 종속성을 본래적․영원적인 불평 등으로 오해한 결과로 생긴 것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계시지 않았을 때가 있다’는 것이요, ‘성자는 시작이 잇으나 성부는 시작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성자는 성부와 영적으로 교제할 수가 없었던 때가 있었고 성부에 대하여 직접적인 지식도 가질 수 없으며 성자는 변화하며 심지어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라 하였다. 성자는 진짜 하나님은 아니고, 명예상 이름만의 하나님이나, 하늘의 로고스가 이 인간 에수의 영혼 대신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까지 부르며 예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아리우스는 예수님의 영혼(the rational soul=지성과 의지)을 제거하고 그 대신 로고스를 대치시켜 이 로고스가 예수님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도너에 의하면 아리안주의는 사벨리안(Sabellian)파의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사벨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참된 사실로 보지 아니하고 단순히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한 가지 양태에 불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아리우스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성자의 인성이었고 그 인성의 실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종속성에 집착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2. 니케아 신조(The Nicene Creed)
콘스탄틴 황제는 제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사도행전 제15장의 예루살렘 회의 이후 최초의 에큐메니칼 회의(The First Ecumenical Council)를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위치한 니케아에서 A.D.325년에 소집하였다. 당시 5교구 곧 로마에 있는 교구(-서방 교회의 전신)과 나머지 알렉산드리아 교구, 예루살렘 교구, 안디옥 교구 및 콘스탄티노플 교구에서 318명의 감독이 참석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지었는데, 후에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보완된 후 동방 교회 내지는 희랍 정통교회의 고전적 신조가 되었다.
2.1. 신조의 형식을 보면 교회의 참된 삼위일체적 신앙이 아리안파(Arian)와 반 아리안파(Semiarian)의 오류를 반대하여 정확하게 정의되고 있다. 그것은 세 가지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분명히 사도신경이 생성된 형식들과 유사한 선재적(先在的) 형식의 모형에 맞추었다.
2.2. 신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삼위일체에 관한 것인데 그 초점은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요, 이 예수님은 인간이실 뿐만 아니라 성부의 신성과 동일한 신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3. 칼케톤 회의 이전의 논지들
1) 아폴리나리안파(Apollinarians;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정죄) :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 부인
아폴리나리안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을 부인하였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헬라철학 사상의 개념),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과 혼을 가지고 있으나 영의 자리에 로고스(Logos)가 대치되었다는 것이다. 아폴리나리스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인간의 영을 죄의 자리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옹호하려는 목적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주장하되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졌으나 그 육체는 어떤 방식으로 매우 승화되어 거의 육체가 아니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무죄성을 옹호하려는 나머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희생시키는 오류를 낳고 말았다. 그가 주장했던 쟁점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위험에 처하게 되었음은 그리스도의 양성의 구별을 과장했던 안디옥 학파의 입장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2) 네스토리안파(Nestorians;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정죄) : 그리스도의 단일 인격 부인
네스토리안파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신성과 인성의 참된 연합을 부정하고 그것을 유기적인 단일체로 보지 아니하고 도덕적인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인성과 신성을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에 귀속시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신(神)과 인(人)이라는 두 인격의 중보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함께 사람, 곧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지만 단일한 인격적 생명의 하나 됨에서는 그와 하나가 아닌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안디옥 계통의 네스토리우스는 그의 선배 유스타티우스, 디오도르 및 테오도르에 이어 예수님의 인성 확보에 힘쓴 나머지 그의 신성과 인성의 독립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성(性)과 위(位)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여 그리스도라는 한 위에 이성(二性)이 귀속됨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래서, 같은 희랍 계통의 시릴(Cyril)은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Person) 안에서 교류(communcatio idionmatum)하면서 통일을 이룬다고 하여 결국 예수님의 신성 혹은 로고스에 무게를 두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은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다시 정죄되었다.
3) 유티키안파(Eutychians;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정죄) : 그리스도의 이성(二性) 부인
유티키안파는 신성과 인성이 구별된 채로 그리스도 안에 함께 공존함을 부인하고 두 개의 성(性)이 하나로 혼합되어 제 3의 하나의 성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에 신성은 인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으므로 인성은 필연적으로 신성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인성을 흡수한 신성이 본래의 신성과 같지 아니하다 할지라도 인성은 분명히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제 3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티키안파는 자주 일성론자(一性論者)라고 불리워져 왔다.
이 이론은 네스토리안파의 이인격(二人格) 교리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단일 인격을 강조하려는 나머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성(二性)의 구분을 말살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4. 칼케돈 신조(The Symbol of Chalcedon)
A.D.451년에 말시아누스 황제는 제 4 차 에큐메니칼 회의를 콘스탄티노플 맞은편 보스포루스에 있는 비두니아의 칼케돈에서 소집하였는데, 이는 유티키안과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정죄하기 위함이었다.
1) 이러한 이단들은 헬라 계통의 ‘알렉산드리아 교구’와 유대 전통에 영향받은 ‘안디옥 교구’에서 인성이나 신성을 극단적으로 배척하였기에 일어났다. 전자는 플라톤의 사상과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요 로고스라는 점에 무게를 둔 나머지 그의 인성은 가현(假顯)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그것은 공관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님의 구체적 인성 내지는 역사성을 중시하여 그의 신성을 소홀히 여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 두 흐름은 이전보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사람 되심을 모두 인정하면서 그 강조점을 달리하였다.
2) 칼케톤의 정통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의 이성(二性)이 있어서 각 성은 완전하고 유기적이며, 또 나눌 수 없이 연합되어 있으나 오히려 제 3성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는 이성(二性) 일인격(一人格)이라고 하였다. 이 회의는 이 교리에 포함된 난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도 그릇된 견해들을 막기에 노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성(二性) 일인격(一人格)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계시된 신비이기 때문에 그 교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5. 칼케돈 정통교리 이후의 주장들
칼케돈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이성(二性) 일인격(一人格)이라는 정통 교리가 확립된 후에도 기독논쟁을 결코 종결되지 아니하였다.
1) 일성론(一性論)
위에서 발한 바와 같이 유티키안파는 일성론자(一性論者)로 불리웠는데, 이들의 주장은 칼케돈 회의에서 정죄된 이후에도 북 애굽의 콥트교회와 근동의 알메니아 교회에 남아 있었다. 그들에 의하면 구별된 이성(二性)필연적으로 이인격(二人格)을 포함한다는 것이었다. 일성론자(一性論者)들은 그들 자체 안에서 조차 서로 일치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으며 그들 중에는 하나님이 고난받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오파쉬티스트(Theopaschitists)도 있었고, 칼케돈 신경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같아서 고난당하실 수 있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부패할 수 있는 것에 에배를 드리고 있다는 주장을 한 프탈톨라트리스트(Phthartolatrists )도 있었으며, 또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앞탈토도세티스(Aphthartodocetists)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동질일 수가 없으며 신적 속성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무죄하고 불멸하며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2) 일의설(一意說) 논쟁
칼케돈 회의에서 이성(二性) 일인격(一人格) 교리가 확정되어졌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지가 하나이냐 두 개이냐, 또 그 의지는 위(位)에 속하느냐 인성이나 신성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일의설파와 이의설(二意說)파가 나뉘어졌는데, 일의설파는 인격의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리스도 안에는 한 의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이에 반하여 이의설파는 그리스도의 이성(二性)에 기초하여 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의설 주장자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생활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이의설 주장자들을 비난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680년에 열린 제 6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끝이 나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이의설을 정통교리로 받아들였으며 동시에 인간 의지는 신적 의지에 항상 예속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3) 다메섹 요한의 발전된 기독론
다메섹의 요한에 이르러 기독론은 최고의 발전에 이르렀다. 그에 의하면 인간 예수가 로고스를 입은 것이 아니라 로고스가 인성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성(二性)을 통일하는데, 로고스가 지배적인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콥 교수는 다메섹 요한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로고스는 인간 개체도 아니며 보통 인성을 취하신 것도 아니다. 가능성 있는 인간 개체, 다시 말해서 아직 한 인격으로 발전되지 못한 인성을 취하셨다. 로고스가 마리아의 복중에서 이 가능성 있는 인간과 연합함으로써 후자는 한 개체적 실존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독립적인 인격을 갖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로고스 안에서 또는 로고스를 통해서 인격적 실존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인격적이 아니라 인격적이다. 그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결합을 말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속성들이 인성에 전달되므로 인성이 신성화되었으며 또 하나님이 육신으로써 고난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성(二性)의 협력과 그리고 한 인격이 각 성(性)에서 행동하고 의지를 발휘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의지는 성(性)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의지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의지가 되었다.”
4) 양자설(Adoptionism)
이 이론은 2세기 후반에 일어나고 7,8세기에 부활된 이단적인 기독론이었다.
이 이론의 주장자인 휄릭스 감독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로고스인 신성으로는 본래적 의미의 하나님의 독생자이었으나, 인성의 편에서는 양자(養子)의 형식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인자(The Son of Man)기 잉태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의 인격과 연합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인격의 통일성을 보존하려고 하였다. 휄릭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주장 근거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는 말씀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는 말씀을 내세웠다. 즉 전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후자는 인자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반대자인 유명한 신학자 알쿠인은 말하기를 “한 아들을 본래적 아들과 양자적 아들로 구분해서 갖는 아버지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벌콥 교수는 이 설에 대하여 평하기를 ‘그리스도가 양자되는 특별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부여받게 될 때까지 그리스도의 인성을 일종의 외인(外人)적인 입장에 둔 것은 확실히 양자론자들의 오류이었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주후 프랑크푸르트 대회에서 정죄되었다.
5)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론
토마스 아퀴나스는 전통적인 이성(二性) 일인격(一人格)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성(二性)이 연합된 결과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중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그 첫째는 단회적 은혜이다. 이것은 인성과 신성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인성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속적 은혜이다. 이것은 인간인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성화의 은혜를 말하는 것으로 이 은혜로 이 인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유지하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