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의 전통적 기독론 수용

▶ 웨슬레의 전통적 기독론 수용

1. 웨슬레의 전통적 기독론과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웨슬레의 기독론에 대한 주요 관심사는 구원론이다. 웨슬레는 형이상학적인 사변적인 것을 피하고 인류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복음주의적이며 실용론적인 측면이 강한 복음주의자이였다. 그의 성결론은 인간의 모습과 신의 영역인 것으로 주로 신적인 요소로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품성인 성결에 대한 인습으로 이론적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 체험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몸의 성결뿐만 아니라 신의 성품인 마음의 성결까지도 주장하였다. 이것은 한 개인의 신적 성결을 넘어 사회의 성결로 넘어가는 것을 주창한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견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2. 웨슬레의 전통적 기록론과 성공회적 기독론


    감리회의 25개 신조 중에서 ‘제2조’: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 동일하신 본질이시며, 복 받은 동정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웨슬레의 생각은 가톨릭의 주장과 동일하지만 공경은 거부한다. 마리아 역시 죄인이며 인간이다. 동정녀는 예수의 양성이 모두 삼위 하나님에 의해 기인되었음을 강조하는데 있다. 성령에 의한 동정녀 탄생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의 태중에서 사람의 서품을 취하시어, 완전한 두 성품 즉, 신성과 인성으로 나뉘지 않고 일위 안에 합하였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랑이신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매장되시어 우리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셨으니 그는 사람의 원죄뿐 아니라 모든 자범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시었다. 김진두. 「웨슬레와 우리의 교리」, (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2005), 371.
    라고 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온 양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인격을 이룬다. 웨슬레에게는 양성의 인격합일은 이미 전제 돼 있음을 반복하고 있다(히 2:9, 골 1:19, 2:9,10, 요 2:19, 히 8:2, 4:14, 고전 11:3, 엡 1:3).

    웨슬레의 배경과 중심에는 당시의 성공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일생동안 그는 성공회 목사로서 살았으므로 성공회로부터 핍박은 있었지만 그는 감리교(the Holy club)가 새로운 교회가 아니라 성공회를 개혁하는 누룩으로 보았다. 웨슬레의 기독론은 성공회의 틀 안에 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그의 기독론은 성공회 안에서 그리고 성공회가 물려준 역사적 신학적 해석의 전통 위에 있다.

    3. 성육신 사건의 웨슬레의 기독론적 견해


    칼빈의 예정론과 대항하기 위한 웨슬레의 생각은 「예정론에 대한 냉정한 고찰」이란 논문에서 성육신의 세가지 필요성을 역설한다. ① 타락한 인간이 회복되는 일에는 창조주 만이 가능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성을 취해야 한다. ② 사랑과 공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의 조화 때문이다. ③ 보다 성결 된 피조물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결정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서 속죄와 칭의를 위한 화목물일 뿐만 아니라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성화의 기준이 된다. 특히 그는 예정론이 성결한 신앙을 파괴한다고 보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 성결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한영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결에 관한 연구, op. p 122.
    웨슬레는 1764년 칼빈주의자는 사랑하지만 그들의 견해에 대하여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예정론은 하나님의 바른 교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웨슬레의 최종적인 목표인 성결론에서 칼빈주의는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4. 요한 웨슬레가 말하는 기독론


    1749년 웨슬레가 가톨릭 신자에게 보낸 편지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참되고 정당한 아들이며,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요, 참 하나님임을 믿는다.(the proper, natural Son of God, God of God, very God of very God): 그분은 만물에 대한 절대적, 최고의, 우주적인 지배권을 가지신 만유의 주이시다. Letters, III, p. 8.

    여기서 고백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의 웨슬레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 표현된 문장은 니케아-칼케돈 신조와 일치하고 있다.

    5. 웨슬리의 전통적 기독론 (1) : 중보자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온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는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속죄의 제물이 되신다. 웨슬레는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또 인간에게 찾아오신다. 성부의 요소가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그러면서 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웨슬레는 중보자로서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일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시키고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는 ‘한 중보’가 없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기뻐할 바 가 못된다(딤전 2:5).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는 3가지 직분을 가진다. 즉,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적인 직분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세 직분은 그리스도라는 직명에서 유래한다. 헬라어의 그리스도, 히브리어의 메시아로서 뜻은 똑 같이 ‘기름을 받은 자(anointed)’ 라는 뜻이다. 고대 유대에서는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왕의 직분을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고 한 인격 안에 세 직분을 가지셨다.


    주관적으로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위해 우리가 발견하는 삼중적인 필요성에 대한 해답을 오늘도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발견하게 된다. ①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게 되었음으로 중보자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②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중보자, 예언자로서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③ 우리의 마음은 불순종하는 정욕과 물욕의 지배를 받으므로 모든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복종할 하나님 즉, 통치자 왕으로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마 1:16).

    직분으로서는 구분되지만 이 세 직분은 동시적인 것으로 인정되며 세 직분이 서로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으므로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배경을 나타낸다. 삼중직은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밝히고 있고, 셋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부인하는 것을 곧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싸우는 죄와 같다고 웨슬레는 요한2서 7절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 이들은 바로 예수의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직을 부인하는 자들이니, 당시들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조심하여 지키시오, 이것을 행하는 자(삼중직을 부인하는 자)가 유혹하는자요,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적 그리스도니라(요이서 7).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는 삼중직을 함께 전해야 한다.

    6. 웨슬리의 전통적 기독론 (2) : 예언자로서 그리스도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는 신적 진리의 완전한 계시자이시다. Miley J., Systematic theology, vol. 2.(Peabody: Hendrickson), p. 213. 198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에게 전파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인 복음과 율법을 선포함으로 ‘위대한 법의 수여자(the great lawgiver)’가 되신다. Note, 웨슬레의 설교, Sermons 2:316
    웨슬레는 예언자 그리스도에게서 구약 예언의 완성과 함께 계속성을 확인하였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이미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고(행 7:30) 때로는 천사를 통하여 혹은 예언자로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구약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그리스도는 구약 예언의 완성이며 모든 예언의 종료를 의미한다. 이점에서 그리스도는 최후의 예언자로 결정적 예언자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그의 예언자적 직능을 오늘 날 교회에서 성령을 통하여 계속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 만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하였다. 그러므로 단순히 전달자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 그 자체였다. 이전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자의 주체가 개체라는 관점에서 분리되어 있지만 그리스도는 이 둘이 하나의 인격 안에 통일 되어 있다. 이는 곧 ‘성육신한 말씀(the incarnate word)”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말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삶 자체가 중요하다. 즉, 성육신, 속죄의 죽음, 부활, 승천 등이 모두 계시한 사실이다. 성육신한 말씀으로 그리스도는 말고 삶 전부가 계시이다. 이점에서 그의 예언자 직분은 유일성을 갖는다. 이것은 성부와 온전한 통일성에 기초한다.

    7. 웨슬리의 전통적 기독론 (3) :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

    1) 제사장


    그리스도는 예언자로서 백성에게 서실 분만 아니라 백성들의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신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속죄와 간구의 역할을 그 중요 기능으로 가진다. 속죄는 계약 관계의 회복이며 간구는 회복된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의미한다. 속죄의 필요성은 인간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다. 여기서 웨슬레는 하나님의 분노는 사랑의 다른 면이 있다. 속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웨슬레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보다는 능동적인 순종을 더 중요시한다.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이며 자기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된다는 것이다. Carter C., A Contemporary Wesleyan Theology, vol. I. p. 364.
    이것이 구약이 희생 제사와 중요한 차이 점이다. 구약 시대에서 제사장은 백성(죄인)이 가져온 제물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다시는 희생 제물이 불필요한 제사를 단번에 드렸고 자신이 곧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다. Notes, 히 4:15, 8:17, 9:12-14, 25, 28, 10:12, 18.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그의 제사장직의 이런 특수성을 요구한다. Carter C., A Contemporary Wesleyan Theology, vol. I. p. 364.
    예수는 자신이 온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 죄인처럼 되어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예수의 행위는 하나님 자신의 행위였다. 예수의 십자가 위의 죽음은 하나님 자신이 값을 치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2) 속죄


      우리의 속죄는 하나님의 중심과 삶에서 나타난다. 우리에게 용서와 해방을 주신 값비싼 속죄이다. 웨슬레는 구원을 칭의와 성화의 두 큰 가지에서 생각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는 칭의와 성화라는 구원의 이중사업을 완성하였다. 웨슬레는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만 가능한 칭의와 성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완전한자라도 자신의 죄를 짓고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공로가 필요하며 자신을 위해서나 형제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Note, 마 6:12.
      라고 기도해야한다고 하였다. 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중보가 필요하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 했는데 “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실수, 언어사용의 문제, 판단의 문제, 그리고 수많은 죄를 위해 그리스도가 여전히 지금도 필요하다.”

      8. 웨슬리의 전통적 기독론 :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을 의미한다. 신자들의 마음과 생활에 영적인 다스림뿐만 아니라 교회에 다스림, 나아가 우주의 만물을 지배하고 심판하는 권한이다. 웨슬레는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삼위일체론의 구조 안에서 정립한다. 성삼위의 2위이신 영원한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자연적으로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에 참여한다. 결국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이것처럼 성삼위일체 안에서 신성, 영광, 권위를 나타내는 왕적 신분은 영원하지만 중보자적 왕 직분을 받는 것이다. 중보자적 왕 직분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하여 우주이신 구원자는 자기의 보혈로 구속하신 자기 백성들의 신앙적 영적 성장과 궁극적인 완성을 위해 사역하신다. 앞에서 이야기한 제사장과 왕의 직분은 연관성이 있다.
      여기서 중보자적 왕의 직분은 언제 그리스도에게 수여되었는가? 이는 성육신과 타당성을 고려할 때 중보자적 사역은 예수가 인성을 취하심으로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그의 기적 가운데 왕적인 통치권을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 사건, 부활, 승천하여 보좌에 우편에 앉아 계신 것으로 왕의 신분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만 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성에도 부어주었다. 그 이유는 성육신한 그리스도가 이 절대적 권능을 이미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분은 신성과 인성의 양성 안에서 행사되었다. 웨슬레는 이점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 보좌에도 존재함을 강조하였다.
      웨슬레의 왕의 직분 사역의 세 가지 승리의 영역을 나누는데 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한 승리, ② 성화에 의한 우리 안에서 승리, ③ 최후의 날에 우리주변에서 우주적 승리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은 현재 구원뿐만 아니라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과도 깊게 관련된다.

        9. 웨슬리의 전통적 기독론 수용에 대한 결론

        영국의 개신교의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난 웨슬레는 성공회 목사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당시 대표적인 니케아-칼케돈 공회에서 정한 것에 일치하는 그리스도론은 그의 체험적인 신앙을 주요시한 것으로 18세기의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세계의 많은 영향력을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회인 감리교와 그에 관련한 파생한 많은 교단이 생겨났다. 웨슬레는 모라비안의 영향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그의 회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만남의 계기가 있었으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다메섹에서 변화한 바울과 비슷한 것이다. 웨슬레의 회심은 당시 이신론(Deism) 이신론: 일종의 자연 종교의 체계로서 초월적인 신을 주장하지만 그 신의 내재성을 부인한다. 그런즉, 신은 창조자이지만 섭리하지 않는다.
        에 물들어 있던 냉랭하고 시대적 어려움이 있던 그는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웨슬레의 회심에서 보듯이 그의 성서적 기독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17세기에 놀라운 복음 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은 인간을 찾아오시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웨슬레의 그리스도의 경험은 주로 관심의 대상인 성서적 구원론에 있다.


        웨슬레가 성령 체험한 사건으로 그의 삼위 일체적 개념과 인성과 신성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지식을 알아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웨슬레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성서의 논리를 피하면서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체험을 중요한 부분이 있다. 예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현대 그리스도의 중요한 분야이며 웨슬레는 중점 이야기한다.


        웨슬레는 니케아-칼케돈에 기초한 기독론을 갖고 있으며 이는 성공회의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제사장, 예언자, 왕의 직능의 지도자등의 삼중직에 대한 웨슬레의 생각과 그의 체험에서 보여주듯이 성령에서 이야기하듯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돕는 자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예언자 등의 많은 그리스도의 의견이 정통 교회의 기독론을 따르며 그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면에서는 개신교의 존 칼빈과는 대조를 이루는 개혁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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