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론으로 본 그리스도의 직책

▶ 칼빈의 기독론으로 본 그리스도의 직책

1. 칼빈의 기독론과 그리스도의 직책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예언자와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세 가지 직책을 보아야 한다. 

신약의 헬라어로 그리스도<크리스토스>, 구약의 히브리어로 (메시야)는 번역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된다. 기름을 부어 왕, 제사장, 예언자를 세웠다. 그래서 이들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구약의 직분들은 오실 메시야를 위해 일하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직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직책을 모두 다 가지시고 그 직분의 완성을 이루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라 함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언자로서의 직책에 대한 성구들 우리는 이단자들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일을 심사 숙고할 때, 우리는 이단자들에서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찾아볼 뿐이고, 그 실제는 그들 사이에 계시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사 55:4>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다른 곳에서 이사야는 그를 “지혜가 위대한 사자 또는 해석자”라고 불렀다(사 9:6,28:29; 렘 32:19 융합). 프랑스어판에서는 “Ange ou amdassabeur du haut conseill” (“지혜가 많은 사자 또는 사절”)이라고 했다. 이사야9:6의 주해에서 칼빈은 자기의 이 번역을 따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기묘자라, 모사라 할 것임이라”는 번역을 옹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복음의 교훈의 완전함을 찬양해서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라하고(히 1:1) 다음 :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첨부)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2. 칼빈이 이해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대한 예언자적 직책의 의미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이 세 가지 직책에 참조. (“그리스도는 왕의 왕이시오, 최고의 제사장이시오, 예언자들의 머리시다.”) 관계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율법 하에서 제사장과 왕 뿐 아니라, 예언자도 거룩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시야’라는 존칭은 약속된 중보자에게 주셨다. 그리스도는 특히 왕권에 관해서 또 그 왕권 때문에 ‘메시야’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예언자와 제사장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무시해서 눈 안 된다. 예언자들의 공통된 임무는 교회가 기대를 잃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중보자가 오실 때까지 그 기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이른바 부분적으로 예언자의 직책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가르침으로 모든 예언을 종결시켰다.


    특히 예언자에 대해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그가 성령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아버지의 은총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에서의 음성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사람들을 초원한 각별한 특권으로 그를 높이신 것이다.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임을 강조했다.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즉 그리스도 외에는 알 가치 있는 것이 없으며,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믿음으로 깨달은 사람은 하늘의 은혜, 무한한 전체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구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한다. 복음의 단순성을 초월하려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사도의 태도는 참으로 옳다.우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의 직책을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

    3. 칼빈이 이해한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직책 그 영적 성격(그리스도의 주권의 영원성)

    영적 성격에서 우리를 위한 그 효력과 해택 뿐 아리라, 그 모든 힘과 영원성이 추론되기 때문이다. 왕권이라 함은 그에게서 모든 힘과 영원성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의 손을 거쳐서 자기의 교회의 영원한 보호자와 수호자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단 2:44> “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위 이 영원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또는 두 가지 방법으로 고찰해야 한다. 첫째는 교회 전체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각 교인에 관한 것이다.


    이런 보호 하에서 교회가 확실히 영속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격렬한 동요로 끊임없이 고통하며 폭풍들의 무수한 재난을 위협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보호받는다(시2:2-4). 다윗의 시편에서 교회가 영원히 보존되리라고 신자들에게 다짐하며, 교회가 압박을 받을 때마다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한다(시 110:1).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왕권은 영적인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그 힘과 효험을 깨달을 수 있다. 지상적인 것은 모두 이 세상과 시간에 속했으며 참으로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4.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직책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


    그리스도의 왕권은 영적인 것임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그 힘과 효험을 깨달을 수 있다고 우리는 말한다. 평생 십자가를 지고 싸워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어렵고 가련하다는 칼빈의 특색을 나타낸 말이다. 참조. 마태복음 25:34 주해. “경건자의생활은슬픔과 불행이 가득한 유량 생활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주께서 그들에게“강건하고 활기찬 정신을 주셔서,, 역경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신다.” 칼빈의 저서에는 유사한 발언이 많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왕이라 공헌하시고, 자기 아래서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농담삼아 그의 표적을 보자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각각 자기의 양심을 즐여다 보라고 명령하신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평강과 희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령하신 것은 땅에 붙은 일에 마음이 너무 솔린 사람들이 미련한 영화를 꿈구지 못하게 하시려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의 나라, 그 나라는 지상적이거나 육적인 것이어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높이 들어 올려 영생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과 기한과 멸시와 비난과 그 밖의 괴로움이 있는 이 세상을 참고 지나가야 한다. 다만 한가지, 한가지 일로 만족하자우리 임금께서는 결코 우리를 궁핍하게 버려두시지 않고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며, 마지막 싸움 끝에 부르심을 받아 개선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자기의 권능으로 무장하시며 자기의 웅대한 미로 장식하시며 자기의 부요하심으로 풍부하게 만드신다.

    5. 그리스도의 왕위의 영적인 성격: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주권


    왕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셨기” 때문이다(사 11:2). 곧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음이다. 시편의 아가서로 불려지는 45편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의 기름부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시 45:7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성령에 있고 지상적인 쾌락이나 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참가하려면 이 세상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라는 의미에서 찾게 된다.

    기름부음의 상징은 바로 ‘거룩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 구별하심이 곧 세상과 구별하심이 되는 것이다.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는 이 세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그를 아버지의 대리라고 부른 것과 같으며, 이 대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전적으로 가진 분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통치하며 보호하기로 정하신 것이다. (아래 말씀 참고) 엡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성령안에서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산다. 곧 세상은 이기는 자의 삶이다.  

    6. 칼빈이 이해한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의 직책 (화해와 중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순결한 중보자로서 자기의 성결로 우리와 하나님을 ‘화해’시키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운 저주가 우리를 하나님께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또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우리에 대하여 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기 위해서 속죄가 사이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직책을 다하시려고 제물을 가지고 나오셔야만 했다. 제사장이 피를 들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히 9: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죽음을 제물로 삼아 우리의 죄과를 말소하시고 우리의 죄의 값을 온전히 치르셨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과 제물을 겸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은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기에 합당한 것이 달리 없고, 독생자를 하나님에게 드릴만한 사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참고, 히 5:6, 히 7:15) <히 9:26>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화해자가 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우리 자신은 오염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제사장이므로, 칼빈이 특히 신자의 제사장직에 대해서 한 말은 희소하고 비조직적이지만, 다른 문제를 논할 때에 이 교리에 대해서 한 말은 그 내용이 루터의 생각과 대체로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치며, 자유로 하는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와 찬양으로 향기롭게 올려드려야 한다. 이같은 은혜를 입은 자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구하라! <요 16: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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