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 비평 (1)

▶ 19세기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어마처의 기독론 비평 (1)

1. 슐라이어마허의 기독교 윤리와 기독론

슐라이어마허(Fredrich Emst Daniel Schleiermacher; 1768-1823)는 그가 살던 당시부터 신학자, 설교가, 고전어학자, 그리고 프러시아의 교회 생활과 문화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슐라이어마허가 죽자, 그의 제자 A. 네안더는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교회사에 있어서 앞으로 새 세대를 결정할 인물을 잃었다”고 말했다 (참고 – R. P. Scharlermann, “Schleiermacher” in Encyclopedia Britanica, 1975. 박일민, “슐라이에르마허의 기독론 비평(Ⅰ)”, p.38.에서 재인용)

슐라이어마허는 독일의 신학과 일반 사상계뿐만 아니라, 19세기의 독일 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신학이 독일 신학자에 의해 주도된 이유를 H. 메킨토쉬는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독일에는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았다.

2) 독일의 신학자들에게는 넓은 교리적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다.

3) 독일 사람들의 성격 자체가 철저하고 정확한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 다음가는 불후의 신학서적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종교론”과 “신앙론”을 저술하여 19세기 신학의 새로운 교두보를 이룩했다. 그래서 그는 19세기의 자유 신학자의 선구자이면서, ‘현대 신학자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슐라이어마허에게 가장 신랄한 비평을 가하는 E. 부룬너와 K. 바르트도 “그만이 19세기의 실제적인 위대한 신학자”요, “신기원을 이룩한 인물이었다”는 말로 그의 위대성을 인정한 바 있다. H. 메킨토쉬도 이러한 의미로 말하기를 “지난 50년 간 루터를 제외하고는 그만큼 전체 유럽 학계의 정밀한 연구와 응용의 대상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E. 부룬너는 독일 철학자들이 I. 칸트를 전후로 철학의 시대를 구분하는 것처럼 슐라이어마허를 전후로 신학의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는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그리스도관) 비평

슐라이어마허 당시에는 근세의 주된 특징인 합리주의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인류의 구속을 위해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기보다, 종교적 기본 진리나 도독을 가르쳤던 훌륭한 교사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경향에 맞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객관적인 설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에 기초한 목적론적인 유형의 종교이며, 다른 종교들에 비해 모든 것들을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속과 관련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 위치에 올려놓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는 19세기의 “예수 삶 (Life of Jesus)”운동과 20세기 바르트 이후의 그리스도 중심 신학 전개에 발판을 마련해 주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정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표준에서 보면 상당한 거리 차이가 있었다.

이제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관을 1) 신인(神人)으로서의 그리스도, 2) 역사적 인물로서의 그리스도, 3)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4) 구속의 주로서의 그리스도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그의 기독론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정통적인 견해와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3. 전통적인 기독론의 신-인(神人, God-Man)으로서의 기독론과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 비교


슐라이어마허는 교리적 기독론에는 모순점이 많고 인위적인 성질들이 들어 있기에 교리적 기독론은 객관적인 의식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리나 신학은 기독교적 자아의식에 비취어서 취사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슐라이머허의 기독론은 전통적인 입장과 상당한 거리차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도 크게 수정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다음의 주제들에서 잘 드러난다.

4. 그리스도에 대한 슐라이어마처의 신 의식(God-Consciousness)의 문제점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성을 가지셨지만, 신 의식의 변함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구별이 되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절대적 능력으로 있는 신 의식이 어디에서 유래하게 되었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신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무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 신 의식을 가지고 자아 의식(Self-Consciousness)의 매 순간들을 지배하고 결단케 함으로서 신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신 의식은 그리스도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신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 의식의 정도에 있어서는 서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의 신 의식은 부족하고 저급한 수준의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신 의식은 가장 완전하고 능력 있는 신 의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이 신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여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그의 이러한 완전하고 능력 있는 신 의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사람들을 그 자신의 높은 신 의식에로 이끌어 올리신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원형적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원형적이라는 말은 “절대적 완전”을 의미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 의식의 전달로 말미암아 높은 수준으로 이끌려 올라간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베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 의식에 까지는 미치지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신 의식을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그의 신성에 대한 진정한 계시는 공동체를 건설한 그의 활동과 같은 것이며, 고립된 순간이 아니라 그의 생애의 전 과정이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본래는 저급한 신 의식을 가져서 우리들과 똑같은 자아 의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 의식과 우리들의 신 의식은 본질적으로 보아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신 의식의 씨앗이 자신의 자아 의식 속에 숨어 있던 감각적인 요소들을 지배하여 완전한 신 의식을 성취하게 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말하기를 “우리는 구주의 모범적인 신성(Vorbidiche, Exemplary)만을 인정해야 하고, 관념적인(Urbidichkeit, Ideality) 신성, 즉 절대적인 완전성을 그에게 돌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처럼 슐라이어마허는 L. Berkof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절대적 신성과 인격적인 하나님 되심을 부정했다. 그가 말한 그리스도는 다른 인간들과 동일한 자이었으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점차 무죄하고 능력 있는 완전한 신 의식에 도달함으로서, 하나님으로 여김을 받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P. Tillich는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을 단일신론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L. Boettner는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생각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자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슐라이어마허는 다른 인간들과 동일했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완전하고 무죄한 신 의식에 도달하여 다른 인간들의 원형이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함에서도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신 의식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성을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직관적 감정의 대상인 우주의 기반, 즉 “그 이(Him)”라 할 수 없고 ”그것(It)”이라고 불러야 할 무엇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원형성을 “이적적인 사실”또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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