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에 대한 평가(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 면)

▶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에 대한 평가(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 면)

1. 긍정적인 면에서의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에 기초한 목적론적인 유형의 종교이며, 다른 종교들에 비해 모든 것들을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속과 관련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 위치에 올려놓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1) 그리스도의 중심 신학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원형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만이 구주가 되심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받을만하다. 그는 당시의 교회로 하여금 우리 주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어떠한 분이셨으며, 어떠한 분으로 존재하고 계신가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해주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향한 이러한 경건주의적 열정 때문에 완전한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H.R. MacKinstosh는 말하기를 ‘슐라이어마허는 비록 절름거리는 발걸음일망정 옛 교리보다도 더 경건한 종교적 해석을 향하여 첫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신관이 성경적인 거룩함과 위험을 가지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던 특별한 온정과 사랑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 죄의 보편성 강조
슐라이어마허는 죄의 현실성과 보편성을 강조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죄를 개인적인 사건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칸트에 맞섰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부여 받은 생명의 산 유기체 속에 한 지체가 되어짐을 의미한다고 보았기에 극단적 주관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 할 수 있었다.

3) 의존 감정의 중요성 도입
인간은 무엇인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자기 속에 심겨진 종교의 씨앗을 싹 틔우고, 가꾸어야 하는 종교적 본능을 지닌 존재임을 주장했다.

2. 부정적인 면에서의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

1) 계시관의 빈약
슐라이어마허는 성경 계시보다 인간의 내성에 더 치중한다. 그의 사상은 성경이 아니라 그의 감정을 통해서 다양하게 그려져 나온다. 그 결과 삼위일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구약 성경은 옛 유대인의 지나간 율법으로 취급되어 추방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범신론의 경향을 보이고, 그리스도는 신도 인간도 아닌 모습으로 그려진다.

2) 하나님보다 인간의 신 의식에 치중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보다 인간의 신 의식을 더 중요시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보다 인간의 감정, 경험, 의식을 앞세운다. 관심은 우리 자신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자신의 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묘사되어진다. 그리하여 하나님 중심으로서의 기독교적 특성은 사라지고, 전반적으로 인본주의적 자율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3) 범신론적 기초
신학은 부분과 전체를 구분을 극복하지 못한 채 범신론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사역과 자연 사이의 인과 관계를 물리적으로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신앙론’ 46,47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결과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사람의 행동과 동일할 것으로 취급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무죄하게 완전한 수준에로의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들도 그리스도처럼 되어 질 수 있음을 예상하게 한다. 이것은 누구든지 절대 의존 감정에 의한 완전한 신 의식에 도달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리스도가 되어 질 수 있다는 매우 위험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4) 인격신 개념의 부재
슐라이어마허의 신관에는 무생명적이고 정적인 사유와 그 결과로 생겨난 관념적인 신 존재가 있을 뿐이고, 인격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신은 우주의 기반이 되는 ‘그것(It)’이라고 불려진다. 그 신은 인간이 자기의 의식을 통해서 파악해낸 하나의 힘에 불과하다. 그는 죄를 이해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인격성이 결여되어 있다. 죄는 의지가 개입된 무엇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상태로 설명되고 있다.

5) 그리스도의 이성 이해에 대한 실패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더불어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신 의식에 도달하였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그리스도는 본래부터 하나님이시던 분이 사람 되어진 분이 아니라. 신의 수준에 이른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재림 등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의 선재와 승천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보지 않고 초감성적인 분으로 묘사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시험의 사실성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경험이나 노력을 의미 없는 것으로 약화시키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당시의 시간적 공간적 범주 속에 제한시킨다. 그의 이러한 그리스도의 이성 이해는 그리스도를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반신반인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6) 속죄의 중요성 무시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심각성이 결여되어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을 감정적 존재로 이해하던 구시대 사람들의 막연한 망상에서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넘긴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신 의식의 분여에 따른 주관적인 변화만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의 속죄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정신적 요구에 만족을 느끼는 첫 경험이 있을 분, 법정적 의미의 공의의 만족에 따른 속죄는 나타나지 않는다.

7) 구약시대의 성도와 유아들의 구원에 대한 미해결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관에 따르면, 구약 성도나 유아들에게는 구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신 의식에 접촉하여 저급한 상태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신 의식을 높은 상태에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이 전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 결론

근대 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슐라이어마허가 현대 신학에 미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가 없다. 죄의 보편성을 강조하여 모든 인류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관심을 돌리도록 한 것이나, 이성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던 기독교에 뜨거운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한 것은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그러나 그는 신학을 객관적인 계시에다 그 기초를 두지 않고 인간 자신의 감정을 토대로 한 나머지, 신학이 아닌 인간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적 예수 상(象)을 그리는 작가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남다른 경건주의적 열정이 넘쳐나고 있었음에 그 열정은 윤리종교의 차원 속에서 용해되고 말았다.


우리는 슐라이어마허를 보면서 계시 의존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재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계시에 주어진 내용을 인간의 이해나 감정에 맞추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와 감정을 그 계시에 적응시켜야 바른 구속 신학이 가능함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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