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 쟁점 연구
오늘날과 같이 사회적으로부터 기독교 공통체가 연약한 존재, 광신도 집단라고 생각될 때 슐라이어마처가 나타나 감정적, 체험적인 신학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해석함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보통 이성을 강조한 슐라이어마처의 신학 때문에 우리와 다른 신학으로 고정관념을 갖기 쉽다.
1. 슐라이어머처의 기독론 : 절대 의존의 감정
1.1.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정의
1.1.1.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감정은 이성과 의지에 반대되는 주관적, 감상적,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성과 의지가 주체의 부분적 측면이거나 추상적인 면이지만, 감정은 자아의 전체성과 연합성(totality and unity)에 관한 것이다. 감정은 인식적, 이론적 주체도 아니며 윤리적 주체도 아니며, 인간의 자아 의식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감정은 전성찰적(pre-reflective)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전체적 인간 실존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감정은 객체가 없는 전체로서 외부와 관계가 없이 그 자체 내에서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1.1.2. 이런 감정 안에서 인간은 절대적 일치와 전체성으로서의 하나님과 교제하여 인간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감정은 주관적, 심리학적 의미의 감정이 아니라, 무한자의 실존적 연합이 가능한, 단순한 인간의식 이상의 차원을 뛰어 넘는 전체적 인간 실존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감정이야말로 종교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 감정의 직접적인 자기의식
1.2.1. 직접적인 자기의식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자기원인적(self-caused: Sichselbst Setzen)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비자기원인적(non self-caused: Sichselbst nichtsogesetzthaben) 요소이다. 전자는 개별자로서의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이고 후자는 타자와 함께 존재하고 타자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이 두 가지 자기 의식은 자기활동과 감수성, 자유와 의존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1.2.2. 자기 의식은 타자와 상호관련한다. 타자에 대해 부분적으로 자유롭고, 부분적으로 의존한다. 그는 이 타자를 유한한 모든 것의 전체라고 마랗며 이 전체를 세계라 부른다. 인간은 부분적으로 유한한 세계에 의존하며 부분적으로 자유롭다. 유한의 영역에는 절대적 자유의 감정도 절대적 의존의 감정도 없다.
1.2.3. 이 세계와의 관계를 떠나서 인간은 또한 직접적인 자기 의식 안에서 절대 의존의 감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절대 의존을 수반하기 때문에 유한한 세계에 대한 의식과는 다르다. 절대 의존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모순을 포함하며 초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세계와 구별하는 절대적인 무한자이기 때문이다.
1.2.4. 감정이 종교의 그릇이라면, 절대 의존의 감정이란 종교의 본질이다. 절대적 의존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궁극적 관계이며, 절대 의존의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존(co-presence)이다. 이것은 실제 존재하는 근원자로부터 절대의존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이미 주어진 것을 현존하는 것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1.2.5. 절대 의존의 감정은 인간의 자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단순한 인간 의식이 아니라 인간 의식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실존적 의식이며, 곧 직접적인 하나님 의식이 될 수 있다. 이 절대 의존의 감정은 그에게 있어서 종교의 본질이며, 신학적 기초 원리이다. 즉 무한자에 대한 경건한 영혼의 의존 감정이 그의 신학적 기초 원리가 된다.
2. 인간 원형으로서의 그리스도
2.1. 그리스도가 우리와 동일한 인간성을 지녔지만, 하나님의 의식의 변함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식을 가지고 자기 의식을 지배하고 결단케 함으로서 신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2.2. 그리스도가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식을 가졌다고 말하며 이 완전한 하나님의식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신성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즉 예수는 원형적 완전성(Urbildliche Vollkommenheit)을 지닌 신적존재라는 것이다.
2.3. 예수는 역사성과 원형성이 일치되어 역사적인 인격과 동시에 원형적인 완전성을 지닌 분이시다. 예수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은 그 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식이 바로 그 분 안에 계신 참된 신의 존재였다. 즉 완전한 하나님의식이 예수에게 있다는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이 예수에게 성육신하였다는 것이다.
2.4. 전통적인 이론을 배격하고 오로지 의식과 감정에서만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는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양성 문제(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본성의 통일”(Einheit der Natur)이라는 말을 피하고, “본질의 통일”(Einheit des Wesen)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 데, 이 본질이라는 말도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의 본질적 통일 관계를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5. 그리스도의 양성의 관계를 설명할 때, 심리적 용어인 능동과 수동이라는 표현을 도입한다. 이것은 양성의 관계에서 신성은 온전히 능동적이고 자기 교통의 본질이지만, 인성은 온전히 수동적임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3. 역사적 예수와 로고스
3.1. 역사적 예수
3.1.1.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역사성이나 그의 실제적인 경험 사실 그 자체보다는 그 사실에 접하는 자의 주관을 더 중요시 했다.
3.1.2. 그는 역사적 예수의 인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신성 이해는 에비온주의(Ebionism)에 가깝고, 인성의 이해는 도케티즘(Docetism)에 가깝다.
3.2. 로고스
3.2.1. 슐라이어마허는 로고스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한복음 1:14절에 나오는 말씀(λογος), 생명(ζωη), 말(ρηματα)을 그리스도의 인격의 세 양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말씀으로서 생명이며, 생명을 나누어주는 능력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와 창시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2.2.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면서도, 그는 결코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한다. 말씀(λογος)은 영원한 신적 존재의 성육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말씀은 의식의 형태로 표현된 하나님의 활동이요, 사람에 불과하다.
4.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4.1. 인간의 죄
4.1.1. 아담과 하와에게서 최초의 죄가 발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졌던 본래적 죄악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본래적 죄악성은 사람의 본래적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4.1.2. 슐라이어마허의 죄론은 죄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볼 수 있는 영과 육의 본질적 충돌은 모든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인간 본성의 본래적인 특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4.2. 그리스도의 무죄성
4.2.1.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도덕적 절대 순결을 기독론의 원칙으로 삼는다.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완전성의 근거를 외부 환경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찾았다.
4.2.2. 첫 아담은 미완성의 피조물이었고, 이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인 둘째 아담 존재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 둘째 아담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첫째 아담은 물질 세계를 완성하게 되었고, 둘째 아담은 인간의 영적 창조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5. 그리스도의 신비적 구원론
4.5.1. 구속의 의미
슐라이어마허에게는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전적 타락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속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자신의 신 의식 속으로 이끌어 들여서 자기가 이룬 승리의 영광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② 우리를 자신의 축복된 친교 가운데로 받아들여서 불의나 죄책으로 인한 저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4.5.2. 그리스도의 원형성
슐라이어마허는 구속주의 특징을 “원형성”과 “모범성”이란 말로 집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형성을 통해 구속주가 되시고, 모범성을 통해서 그 구속을 성취하심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로서 완성된 인간의 모범이었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에게 그리스도의 원형성과 모범 사이에는 지나친 비약이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자아 의식을 가진 자로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만인을 위한 구속의 원형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