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틸리히의 기독론에 관한 연구 : 기독론의 전제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1886년 8월 20일 독일 부란테베르그 지방의 스탈찌젤 바이 구벤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이 되던 1904년 그는 아버지를 따라 목회직에 몸을 바치기로 결단하였고, 또한 철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틸리히는 일생 동안 시대의 질문에 맞추어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을 입증하려 하는 변증 신학을 전개했다.
폴 틸리히는 그의 그리스도론을 과거의 어느 신학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치밀한 조직성 및 논리성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방법”을 관철시키고 있다. 황승룡.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론.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관은 인간 실존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름 아닌 소외이다. 인간은 그의 존재의 근거와 다른 존재들, 그리고 그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본질에서 실존으로서 전이는 개인적 죄책과 우주적 비극을 낳는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소외는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아닌 인간 밖에서 오는 힘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데, 이러한 인간 실존의 모순과 분열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새로운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라고 말한다. 이러한 폴 틸리히의 기독론은 그의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가장 잘 드러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 이성과 계시에 나타난 기독론
1) 이성과 계시의 요청
폴 틸리히는 이성을 존재론적 이성과 기술적 이성으로 나눈다. 고전적 전통에 따르면 존재론적 이성이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헤겔의 시대까지 나타나는 바, 로고스로서 이성을 이해한다. 이성이란 정신으로 하여금 실재를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해주는 정신의 구조를 뜻한다. 기술적 이성은 독일 고전적 관념론의 붕괴와 영국 경험론의 발흥으로부터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성을 추론 위한 능력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폴 틸리히에게 있어서의 이성이란 단지 기술적일 수만 없고 기술적인 것을 포함한 존재론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폴 틸리히에게 있어서의 이성의 깊이는 인식적 영역에서는 진리 자체, 심미적 영역에서는 미자체, 법적 영역에서는 의 자체, 공동체적 영역에서는 사랑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실존의 상황에 있는 이성은 여러 구조적 요소 사이에서 갈등의 상태 속에 있는바, 이 상태는 세 가지로 표현된다.
첫째, 자율적 이성과 타율적 이성 사이의 갈등이다.
둘째,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갈등이다.
셋째, 형식주의와 정서주의의 갈등이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 이성의 합리적 구조와 그 깊이의 통전을 이루지 못하고 이성을 구성하는 제반 속성들은 유기적 통일을 잃고, 양극화 현상을 노정하면서 그것들의 통일, 연합, 화해를 갈망한다. 현실 이성의 이 갈망을 틸리히는 계시의 요청이라 한다.
2) 계시의 실재
계시란 인간 이성의 인식기능을 위하여 존재의 신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계시란 지식을 주는 것인데, 계시가 주는 지식이란 존재의 신비에 대한 지식이지 존재의 본성이나 그들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폴 틸리히는 실제적 계시는 필연적으로 궁극적 계시라고 본다. 여기의 궁극적이라는 뜻은 마지막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의 표준이 되는 결정적, 성취적, 탁월한 계시라는 뜻이다.
폴 틸리히에 의하면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나타난 궁극적 계시는 신약 성서의 모든 원초적 증언과 해석에 의해서 다음 두 가지로 특징 지워진다. 첫째는 하나님과 하나됨을 유지하였다는 점이요, 둘째는 바로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었던 모든 특권을 자발적으로 희생하였다는 점이다. 궁극적 계시인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여러 힘의 결정적 집합체이며 현실 역사에 뜻을 두는 중심이다. 또한 궁극적 계시인 그리스도인 예수의 계시는 보편 타당하다.
계시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는 동일한 역사이다. 계시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고, 구원의 경험 없이 계시 사건이 일어나는 법은 없다. 또한 궁극적 계시로 하나님의 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실존 속에서의 구원은 단편적이기 때문에 우주를 포함한 하나님의 왕국에서만 인간은 구원될 수 있다.
계시는 이성의 실존적 갈등 속에 암시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폴 틸리히는 말한다. 어떻게 궁극적 계시가 실존 이성의 물음에 대답을 주고 그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긍극적 계시는 자율과 타율 사이의 갈등을 본질적 결합인 신율에 의해 극복한다.
실존 이성의 갈등의 극복은 구원된 이성에 의해서 가능하다. 선율적 이성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형식주의와 정서주의의 갈등을 초월한다. 이것이 계시 안에 있는 이성이다. 그럼 계시의 근거는 무엇인가? 계시의 근거는 실존 속에 현시되는 존재의 근거이다. 존재의 근거를 지칭하는 종교적 언어는 하나님이다.
지금까지 폴 틸리히의 인식론적 원리인 이성과 계시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먼저 이성과 계시의 관계에 있어서 이성의 갈등은 계시의 능력에 의해서 치유된다는 틸리히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이성에서 계시로 향하는 방법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실존적 질문으로부터 신학적 답변으로, 인간이성으로부터 신적 계시로, 즉 계시를 요청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과 이성의 요청에 대한 계시의 일치로 나아가게 한 점이다.
이성에서 계시로 진전하는 데 있어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계시의 조정이 문제이다. 폴 틸리히가 주장하는 상관 관계의 방법은 계시가 필연적으로 인간의 물음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내용에 있어서는 상호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성과 계시의 상호 관계에서 이성의 갈등은 계시인 무한 즉 그리스도인 예수의 궁극적 계시에 유한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인 예수에게 희생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과 그리스도론과의 관계
이 부분에서는 폴 틸리히의 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론에 도달한다. 존재론이란 존재의 탐구를 뜻한다. 폴 틸리히의 존재론은 인간 존재로부터 시작하여 존재 자체인 하나님과 관련시키고 있다.
1) 존재와 하나님의 질문
폴 틸리히의 신학은 철저히 그의 존재론에 의존하고 있다. 신학의 기본적인 물음은 하나님에 대한 해답이라고 폴 틸리히는 말한다. 틸리히는 존재론의 개념을 네 차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차원은 기본적 존재론적 구조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묻는 주체와 물음을 받는 객체로 주관과 객관이 구조를 전제하고 또 존재의 근본적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기본적 구조의 양극성이다. 이러한 기본적 존재론적 구조를 이루는 세 가지 양극성은 개체성과 보편성, 역동성과 형상, 자유와 운명이다. 셋째 차원은 실존을 위한 존재의 능력과 본질적 존재와 실존적 존재의 차이를 설명한다. 넷째 차원은 전통적으로 범주라고 불려진 개념인데, 이것은 사유와 존재의 기본적 형식이다. 신학의 관점에서는 시간, 공간, 인과율, 실체의 네 가지 범주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유한의 본질을 분석해야 한다.
2) 존재와 유한성
존재의 물음은 비존재의 충격에서 생긴다. 따라서 인간은 비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 틸리히에 의하면 비존재에 의해서 제약된 존재는 유한하다. 유한은 인간적 차원에서 경험되고 비존재는 존재의 위험으로 경험된다. 의식되는 유한은 불안이다. 불안은 존재론적 특성이다. 불안은 유한으로서 유한한 자아의식이다. 존재는 언제나 비존재의 위험 가운데 있으므로 불안하다.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실존이라 부른다. 실존과 대립되는 말은 본질인데, 실존과 본질이라는 용어는 폴 틸리히의 존재론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의 중심이 된다.
폴 틸리히가 의미한 본질이란 사물의 가치 평가를 제외한 사물의 본성, 사물로 사물 되게 하는 보편적 이데아, 사물을 판단하는 사물의 척도와 규범, 모든 피조물들의 본래적 신성,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만물의 원형 등을 뜻한다. 반면에 그가 의미하는 실존이란 잠재적이고 가능적이던 본질이 현실적으로 실현된 상태로서 본질로부터의 이탈이며 타락을 뜻한다. 비존재의 위협 속에 있는 유한한 실존적 존재는 하나님에 대해서 묻게 된다. 하나님의 물음은 인간이 불안으로 인하여 경험하는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하는 존재의 물음과 불안을 극복하는 용기에 대한 물음이다.
3) 존재의 힘(하나님)
폴 틸리히의 신학 체계에 있어서 근본적 주장은 하나님은 존재 자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므로 본질과 실존의 대립을 초월하고, 존재의 능력이므로 그는 유한한 존재를 초월하여, 통해서, 그리고 안에서 무한히 역사한다. 모든 유한한 것은 존재 자체와 그 무한성에 참여한다. 존재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존재의 위협 가운데 있는 실존의 문제는 해결된다. 존재를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힘과 근원을 가진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4) 그리스도론과의 관계
존재와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론과 연결되는가? 폴 틸리히의 신학은 그의 신학 방법론에 나타난 대로 상관관계로서 모두가 서로 깊은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존재와 하나님, 실존과 그리스도를 내용적인 면에서 좀 더 구체화시킨 것이 관계로서의 하나님이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사랑으로 표현된 하나님인데, 이런 사랑은 인간의 본질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본다.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는 사랑은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론은 기독론을 전제하고 그리스도를 향해야 한다. 하나님론의 결론을 짓는 문제는 실존과 그리스도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