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틸리히의 기독론에 관한 연구 : 인간 타락과 새 존재
1. 본질에서 실존에로의 전이와 타락
인간이 자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더나 자아 실현을 위하여 유한한 자유를 행사할 때는 소외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었으며 인간이 견지해야 했던 하나님과 선으로부터의 결합을 떠나므로 파멸의 구조 속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 불신앙으로서의 소외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불신앙은 단순히 교회의 교리를 믿지 않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전 존재의 등을 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신앙이란 인간이 실존적 자기실현을 위하여 그 자신과 그의 세계로 향하기 때문에 그의 존재와 그의 세계의 근거로부터 본질적 결합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불신앙은 하나님의 인식적 참여의 붕괴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의 분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불신앙은 인간 존재의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불신앙을 통한 하나님과의 본질적 일체성의 붕괴가 죄의 가장 깊은 기본적 성격이다.
2) 교만으로서의 소외
소외되어 있는 인간은 자기 중심이 본질적으로 귀속되어 있는 하나님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결국 그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폴 틸리히는 이 휴브리스라는 말을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는데 이 휴브릭스란 역적인 죄로서 다른 모든 형태의 죄와 감각적 죄의 형태들은 여기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기 자신 또는 자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삼기에 영적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누구도 자신의 유한성과 연약함을 오류와 무지함과 불완전성과 고독과 불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 존재는 그 속의 모순적인 요소 때문에 본질과 실존의 모순성을 상실하고자 하는 점을 넘어서게 되므로 굉장히 파괴적인 위협에 직면하도록 인간을 충동한다는 것이다.
3) 욕망으로서의 소외
전통적 의미에서의 욕망은 자기 자신 속에 전 실재를 잡아당기려는 무한한 욕구를 말한다. 폴 틸리히는 이러한 욕망은 성, 육체적 갈망, 지식, 물질적 부, 정신적 가치 등에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존재의 능력과 존재의 근거로부터 터나 자기 중심을 가진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은 존재의 충만성의 결핍을 느끼고 무한한 능력을 다시 얻으려는 충동과 갈등을 느낀다고 폴 틸리히는 말한다. 이러한 갈등의 때에 인간은 자기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기 생명의 구심점으로 끌어당겨 유일한 실존의 존재 결핍성과 불안정을 보강, 보완하려는 무제약적 욕망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욕망의 실례들은 문학, 예술, 철학, 심리학 등의 작품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4) 죄의 개념
폴 틸리히는 죄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죄를 하나님과 분리인 소외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소외 상태에서 나타난 세 가지 죄의 특성은 불신앙, 휴브리스, 끝없는 욕망이라고 보았다.
2. 새 존재와 구원
1)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
이는 나사렛에 살았던 한 사람의 이름과 신화적 전통에서 특별한 임무를 지닌 특별한 인물을 표현하는 “그리스도”라는 칭호의 결합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 예수”등의 칭호로 부르고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본래적으로, 본질적으로, 영원히 그리스도인 예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 예수는 역사적 사실인 동시에 신앙으로 수용되는 주제이다.
2)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의견
틸리히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역사적 비평의 탐구는 다른 모든 역사적 탐구와 같이 개연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종교적 확실성은 치밀한 연구에 의해서 변화되는 정도의 개연성에 의존할 수 없다. 신의 계시의 역사성이 신앙의 확실성의 문제라면, 성서적 기록의 역사성은 역사적 탐구에 의해서 도달된 개연성 정도의 문제이다. 폴 틸리히는 여기에서 두 종류의 역사성에 대해서 분명히 구별하는데, 먼저는 성서적 견해에 있어서의 역사적이라는 뜻으로 이것은 역사적 사건을 통한 신의 자기 계시를 뜻한다. 다음은 과학적 견해에서의 역사적이라는 뜻으로 모든 역사적 검증의 한계 안에서 증명된 사건을 뜻한다. 후자의 의미에서의 역사적 예수는 단지 개연성에 의해서 입증되는 사건에 근거한 역사가의 판단에 의한 인위적인 것이다. 이런 역사적 예수는 종교적 확신을 줄 수도 없고 흔들 수도 없다.
3) 새 존재
- 새로운 존재는 틸리히의 신학에 있어서 중심 되는 규범이다.
- 새로운 존재란 실존의 조건 하에서도 소외되지 않은 본질적 존재의 현시로서, 소외와 갈등과 자기파괴 속에 사는 인간의 끝이며, 역사의 질적 중심으로서 역사의 목적이라고 한다.
- 새로운 존재란 실존의 조건에 참여하는 완전한 유한성, 유한성에서 비롯된 유혹의 실재, 실존의 비극적 요소에 참여하는 존재로 보았다.
- 새로운 존재와 같은 개념이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안(in)”이라는 전치사는 참여를 나타낸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의 새로움에 참여한 사람은 새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 새로운 존재란 본질적 존재와 실존적 존재 사이의 분열을 극복한 존재로 전조직신학 체계의 회복원리이다.
- 새로운 존재란 실존의 조건 안에서 왜곡되지 않은 본질적 존재의 현시이다.
- 이 존재는 두 가지 점에서 새롭다고 주장한다.
첫째, 본질적 존재가 잠재적 속성을 지닌 것과 대조할 때 새롭다.
둘째, 실존적 존재의 소외의 속성과 대조해 볼 때 새롭다.
현실 존재의 소외를 실제적으로 극복함에 있어서 새롭다.
폴 틸리히는 타락 이전의 본질적 상태를 분석하기를 dreaming innocence라 하는데, 이는 현실 경험이 결여된 상태요, 인격적 도덕적 죄의식이 없는 상태 즉, 잠재적 가능성의 상태일 뿐이다. 이런 잠재적 가능성에 비해 새 존재는 이와 대조적으로 실제적이며 현실 존재의 소외를 극복한 존재이다.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성서적 모습은 구체적인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로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나님과의 본질적 결합과 인간 실존의 소외적 갈등이 극복된 분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
폴 틸리히는 그리스도인 예수가 새로운 존재로서 소외를 극복한 것을 “예수의 무죄성”이라는 말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서에서 메시야적 유혹에 대한 승리를 보여주기 위한 부정적 술어이다. 실제로 그가 범하지 않은 죄가 열거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모호한 삶 속에서 그가 명백히 선다는 것이 입증된 것도 없다.
그의 선은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참여할 때만 단지 선이었다. 예수는 모든 인류와 같이 유한한 자유를 가지며, 하나님께만 자유와 운명, 그 밖의 양극성의 긴장이 영원히 극복될 뿐, 예수에게는 그와 같은 긴장이 실재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인류와 같지 않았을 것이며, 그리스도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적 모습은 세 가지 사실을 철저히 강조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완전한 유한성
둘째, 유한성에서 비롯된 유혹의 실재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메시야의 직책을 파멸케 하려는 유혹에 대한 승리.
4) 평가
새 존재인 그리스도인 예수에서 틸리히가 주장하는 중심 내용과 제기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새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과, 하나님과의 소외의 흔적이 없는 결합된 본질적 존재라는 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 결합을 회복시키는 존재라는 점이다. 둘째, 기독론을 위협한 단성론을 피하여 새 존재인 그리스도로서 예수를 완전한 인간으로 묘사한 점이다. 셋째, 새 존재는 새 존재의 표현에 의해서 새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새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새 존재의 표현을 통해서 기독론을 구축하려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려고 한 점이다.
반면에 제기되는 문제점으로는, 첫째, 그리스도인 예수의 새 존재를 하나님과 본질적 일치를 이룬 영원한 신인성이라 할 때, 신적 존재와 인적 존재라는 구별된 양성의 개념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그리스도인 예수의 무죄성에 대하여 소외의 파괴력에 굴복시키려는 유혹에 대한 승리로 설명한 그의 주장이 성서의 주장과 어떻게 일치될 수 있으며, 그러한 성서 해석을 정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혹 이런 폴 틸리히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해도 예수가 실존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셋째, 폴 틸리히가 그리스도론을 왜곡한다는 이유 때문에 거부했던 단성론에 그 자신이 빠진 것이 아닌가? (신적 단성론을 거부하면서 인적 단성론에 빠진 것이 아닌가
폴 틸리히는 기독론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기독론의 양성의 개념적 해석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인 예수의 예수성과 그리스도성의 양성의 일치를 찾아야 함을 주장하면서 영원한 신인의 일치 또는 영원한 신인성을 제시한다. 폴 틸리히가 양성에 대한 해석에 사용한 일치성(결합)이라는 말은 신-인 관계에서 본질적 일치가 아니라, 종교적 일치를 말함으로 동일성을 상실하게 하고 더 나아가 양성의 실재성과 양성의 완전성을 해소 시킨다. 양성의 실체의 개념은 위격의 단일성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독특한 것이기에 양성의 실체는 파괴되지 않아야 한다.